지난 8월 중순 두산중공업 창원공장.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사업 우선협상자 선정을 앞두고 UAE 원자력공사(ENEC) 관계자 등 30여명의 현장실사단이 이곳을 찾았다.

공장을 둘러보던 실사단은 원전 웨어하우스(창고) 앞에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UAE 원전 사업의 핵심인 원자로 4기 건설에 필요한 수십만 개의 관련 부품 전량이 진열돼 있었던 것.당시 안전성 못지않게 납기일 준수를 주요 평가 기준으로 삼았던 UAE 실사단에 강한 인상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중공업 창원공장은 국내 원전 관련 업체들의 풍부한 사업 경험과 기술 경쟁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세계적인 기술 수준에 올라서 있는 국내 업체들은 47조여원의 UAE 원전 사업 수주를 통해 해외 진출의 초석을 다질 수 있게 됐다. '내수용'에 머물렀던 국내 업체들이 2030년 1200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 블루오션 시장에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건설부문 200억달러 중 42%가 민간기업 몫

'최강 드림팀'으로 평가받고 있는 한국전력 수주팀은 UAE와의 최종 계약으로 설계 · 구매 · 시공 · 시운전 · 연료공급 등 원전 건설 부문에서만 200억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이게 됐다. 한전은 UAE가 계약 조건으로 내세운 단일 주계약자(single prime contract) 원칙에 따라 이번 계약의 대표 업체가 됐다. 계약서상으로는 한전이 UAE 원전 사업 전체를 수주,한전 자회사들과 두산중공업 현대건설 등 7개 업체에 하청을 주는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된다. 다른 대규모 해외 플랜트 사업과 달리 컨소시엄에 참여한 업체들의 구체적인 사업지분 비율이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래에셋증권은 건설 부문 수주액 200억달러 중 41%인 82억달러가 한전과 한전 자회사에,16%인 32억달러가 두산중공업에 배분될 것으로 추산했다. 55 대 45의 시공 지분을 갖는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은 각각 29억달러,23억달러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아직 기술 자립을 이루지 못한 원전 설계코드,원자로 냉각재펌프(RCP),원전 제어계측장치(MMIS) 등 세 가지 기술 부문에 대해서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에 8억달러가량의 기술 로열티를 지급한다.

◆세계 원전시장 '무한도전'

국내 원전업체들의 도전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년 후인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430기의 원전이 새로 건설될 것으로 전망했다. 건설비용과 유지 · 보수비용을 포함,총 1200조원에 달하는 거대 시장이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 실시되는 100억달러 규모의 터키 원전 사업(2기) 입찰에 나설 방침이다. 요르단 상업용 원전 사업(1기)도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방식으로 수주를 추진 중이다. 민간기업들도 해외시장 진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2020년까지 1000㎿급 원전 31기를 건설할 예정인 중국 시장 공략에 힘을 쏟고 있다. 이 회사는 작년 9월 쟁쟁한 해외 경쟁사를 제치고 중국 진산 3 · 4호기 원자로 사업을 수주하기도 했다. 현대건설은 베트남 최대 국영기업인 릴라마와 양해각서(MOU)를 맺고 베트남 원전 신규 도입을 위한 공동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2016년 처음으로 원전을 도입할 계획인 인도네시아 정부와도 원전 시공 사전준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핵심 기술 자립이 관건

국내 기업들이 원전 기술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지만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바로 원전 3대 핵심 기술의 국산화다. 현재 원전기술 국산화율은 95%에 달하지만 설계핵심코드와 냉각재펌프,제어계측장치 등 3대 핵심 기술은 미국 웨스팅하우스사에 의존하고 있다. 원전에서 발생 가능한 모든 사고를 예측하고 한 주기(18개월) 동안 핵연료의 상황을 예측해 핵연료 장전량을 결정하는 설계핵심코드 기술은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프랑스 아레바 단 두 곳만이 보유하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해외시장 진출 확대를 위해 2012년까지 3대 핵심 기술의 국산화 연구를 마무리지을 것"이라며 "2013년 이후에는 원전이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수출품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