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시장에 집중하다 실패한 대형 전자업체,개발도상국 저소득층을 찾아나선 종합상사와 중소업체….요즘 일본 경영계에서는 세계시장을 주름잡다가 삼성전자에 크게 뒤져버린 대형 전자업체들의 패인에 대한 분석이 많이 나온다.

그 중 하나가 '품질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다. 일본 기업들은 고품질 · 고가격을 고집하면서 선진국 시장에 집중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선진시장뿐 아니라 현지 실정에 맞는 품질과 가격으로 신흥시장을 공략해 TV,휴대폰,홈시어터 등의 시장에서 일본업체들을 멀찌감치 제치고 앞서나갔다는 분석이다.

이런 일본 대형 전자업체들과 달리 일부 일본 기업들은 정반대에 있는 수요자들을 찾아나서 또하나의 성공신화를 써가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돈 없고 힘 없는 사람들을 칭하는 'BOP(Bottom of the Pyramid)' 시장이 그들이 찾아낸 블루오션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쓰이물산이다.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은 미쓰이물산

이 회사는 1998년 인도네시아에서 오토바이 판매 사업을 시작했다. 공공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의 저소득층에 오토바이가 운송 및 이동수단으로 꼭 필요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미쓰이는 올해 인도네시아에서만 40억엔(약 520억원)의 순이익을 올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0년 만에 이익이 두 배나 증가하며 새로운 수익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미쓰이는 인도네시아 소득 수준에 맞는 제품뿐 아니라 영업 및 할부관리 방식도 들여왔다. 미쓰이물산 9500여명의 현지법인 직원들은 125만여건에 달하는 할부구매 장부 관리를 위해 고객의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는 게 일이다. 신용정보 조회를 위한 전산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이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믿을 것이라곤 '사람'과 '동네 입소문'밖에 없기 때문에 직접 직원들이 동네를 돌아다니는 수밖에 없다.

미쓰이물산 측은 "인도네시아 저소득층에 오토바이는 운송과 이동수단으로 꼭 필요하다"며 "그래서인지 가난한 사람들의 할부 상환완료 비율이 중산층 이상보다 오히려 더 높다"고 전했다.

◆"가난한 고객들도 부자처럼 모셔라"

미쓰이가 찾은 개도국 가난한 소비자들의 시장을 부르는 용어는 'BOP 시장'이다. 말 그대로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즉 소득계층의 최하위에 있는 저소득층을 뜻한다. 대부분의 기업들에 이들은 기부의 대상이었지 의미있는 소비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이 시장이 갖고 있는 잠재력이 알려지며 기업들이 사회공헌과 수익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BOP 비즈니스에 나서고 있다.

세계자원연구소(WRI)에 따르면 세계 인구를 1인당 연간 소득별로 구분했을 때 연 소득 2만달러가 넘는 인구는 고작 1억7500만명가량인데 반해 3000달러 이하 BOP계층 인구는 약 40억명에 달한다. 전 세계 인구의 60%가 BOP에 몰려 있는 것이다. 이들이 빚어내는 소비시장 규모는 연간 5조달러(약 6000조원)에 달한다.

1997년 BOP 비즈니스의 개념을 처음 제시한 C.K.프라할라드 미국 미시간대 로스경영대학원 교수는 "비록 제품 한 개당 얻을 수 있는 이윤은 적지만 판매량이 많기 때문에 전체 수익은 결코 적지 않다"며 "BOP 비즈니스를 통해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시장선점 효과도 함께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리다매의 효과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 비즈니스는 최신호에서 미쓰이물산처럼 인도네시아 BOP시장을 무대로 활약 중인 일본 기업들을 소개했다. 구매력도 낮고 체계적인 유통시스템도 갖춰지지 않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들 업체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오직 고객에 대한 무한 정성이 담긴 '박리다매'와 '발품 팔기'였다.

일본의 남성화장품 회사 맨덤은 인도네시아에서 헤어왁스 제품인 '갸스비'의 일회용 제품을 팔고 있다. 일본에서 팔리는 제품은 80g짜리 통에 담겨 있지만 인도네시아에선 용량을 8g으로 줄였다. 물론 가격도 일본의 10분의 1 수준인 개당 300루피아(약 37원)로 내렸다. 야마시타 데쓰히로 맨덤 인도네시아법인 사장은 "인도네시아엔 일용직 근로자가 많아 그날그날 필요한 물품만을 구입하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일회용 포장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일회용으로 쪼개서 판 갸스비 헤어왁스는 연간 3억개 이상이 팔리고 있다.

세계 최대 조미료기업인 아지노모도는 3인 1조로 구성된 400여개의 영업팀을 동원해 1주일에 한 번씩 인도네시아 전역의 구멍가게 10만여곳을 순회하며 유통망을 관리한다.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아직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 각종 유통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영세점포가 아지노모도 인도네시아법인 매출의 9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