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29일 특별사면 받음에 따라 동계올림픽 '삼수'에 나선 강원도 평창의 유치활동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1996년 7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선출된 이 전 회장은 지난해 7월 자발적으로 IOC 위원 자격을 중지한 상태이지만 조만간 복귀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복귀 무대는 내년 2월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앞서 열리는 IOC 총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회장의 특별사면에는 체육계 · 경제계를 중심으로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서는 IOC 위원인 이 전 회장의 역할이 필요하다"며 복권을 요청한 것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특별사면의 배경으로 "현재 정지 중인 IOC 위원 자격을 회복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줌으로써 2018년 동계올림픽 평창 유치에 좀 더 나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이 전 회장은 앞서 두 차례(2010년 밴쿠버,2014년 소치)의 동계올림픽 유치 과정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평창은 두 번 모두 아쉽게 막판 역전패를 당했지만 이 전 회장의 득표력이 없었다면 결선투표에도 오르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체육계의 분석이다. 특히 이번 세 번째 유치 경쟁은 이 전 회장이 IOC 내부에서 사실상 '고군분투'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한국은 현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문대성 IOC 선수위원이 있지만 '초선'인 데다 인맥도 넓지 않아 이 전 회장만큼 절대적인 영향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다.

이 전 회장은 자크 로게 IOC 위원장,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 종신 명예위원장과 각별한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로게 위원장은 2007년 과테말라에서 삼성이 IOC와 올림픽 후원사 연장 계약을 맺을 때 이 전 회장이 주최한 행사에 직접 방문해 축하해주기도 했다. 로게 위원장은 수차례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이 전 회장과 공식,비공식 만찬을 갖는 등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전 · 현직 위원장인 두 사람은 두말할 나위 없이 IOC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유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아프리카지역 IOC 위원들과 친분이 두터워 이 전 회장의 복귀는 아프리카지역 IOC 위원들을 우군으로 끌어들일 가능성을 높였다고 평가할 만하다. 물론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선언한 독일 뮌헨과 프랑스 낭시는 각각 3명,2명의 자국 IOC 위원들을 통해 이미 사전 유치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점으로 볼 때 이 전 회장의 복귀는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본격적인 유치전은 IOC가 2018년 동계올림픽 최종 후보도시를 발표하는 내년 6월 이후에 막이 올라 지금부터 국가 차원에서 힘을 합치면 못할 일도 아니라는 게 체육계의 기대다. 여기에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갖고 있는 삼성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동계올림픽 유치에 큰 힘이 될 전망이다.

이 전 회장은 내년 1월 미국에서 열리는 가전전시회인 CES에 참석한후 2월에는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앞서 열리는 IOC 총회에 참석해 유치전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IOC 위원 복귀 후 첫 행사이자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2011년)을 1년 앞두고 열리는 마지막 총회이기 때문.삼성그룹 관계자도 이날 "이 전 회장이 앞으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라는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분간 기업 오너로서의 역할보다는 올림픽 유치에 전력을 다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 전 회장은 1982년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을 맡으며 스포츠계에 발을 디뎠으며,IOC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3년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부위원장이 되면서다. 1996년 IOC 위원으로 뽑힌 후 세계 스포츠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그는 올림픽에 대한 애정이 그 누구보다 각별하다. 1997년에는 모토로라가 올림픽 후원사에서 빠지자 "무조건 삼성이 그 자리를 차지하라"고 지시해 삼성이 지금까지 올림픽 공식 후원사로 활동하고 있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의 파워가 발휘된 것은 2003년 프라하 IOC 총회에서다.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에는 실패했지만 국제무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평창을 다크호스로 끌어올리며 단 3표 차이로 아깝게 탈락하는 '미완의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이 전 회장의 IOC 위원 임기는 만 80세가 되는 2022년까지다. 그가 폭넓은 국제 스포츠계 인맥과 자신이 키운 삼성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한국의 첫 동계올림픽 유치를 이끌어낼지 주목된다.

김경수/김용준 기자 ksm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