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힘은 무섭다. 소나무 한 그루 외엔 아무 것도 없던 동해의 바닷가 마을 정동진은 1994년 '모래시계' 배경으로 등장한 뒤 연간 100만명 이상 오가는 국내 최고의 해맞이 명소로 떴다. 방송 전 3.3㎡당 1만원 미만이었다던 땅값 또한 300만~400만원으로 올랐다는 마당이다.

'겨울연가'의 배경인 남이섬 역시 만만치 않다. 욘사마 붐이 한창이던 2005년엔 20만명이 넘는 일본인이 들렀다고 하거니와 이후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드라마 배경이 이처럼 유명해지면서 지방자치단체마다 자기네 지역을 촬영지로 선정해주도록 섭외한다고 할 정도다.

국내만 관심을 모으는 것도 아니다. '파리의 연인'이 방송되면 파리,'프라하의 연인'이 방송되면 프라하 행 여행상품이 불티난다. 이번엔 일본 동북부 아키타현이 때 아닌 한국인 관광 특수를 맞았다는 소식이다. 국내 최초의 첩보드라마로 인기를 끈'아이리스' 덕분이라고 한다.

아키타는 극중 첩보요원인 탤런트 이병헌과 김태희가 단 둘이 떠난 여행지.눈 쌓인 스키장과 호수 등 설경을 중심으로 온천과 기차역 선술집 등이 두 사람의 아름다운 데이트 장면과 함께 소개됐다. 첩보극과는 무관하게 뮤직비디오처럼 장시간 방송되더니 아니나 다를까 방송 직후부터 한국인 관광객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예약이 얼마나 많은지 대한항공에선 내년 3월까지 아키타 직항 노선에 대형 항공기를 배치한다고 할 지경이다. 아이리스 덕에 즐거운 이들은 이밖에도 많다. 백지영의 '잊지 말아요'와 서인영의 '사랑하면 안되나요'등 OST는 대박이고,로체와 K-7을 협찬한 기아차도 예상 밖 홍보 효과에 싱글벙글한다는 것이다.

궁금한 건 서울시가 겨냥한 효과다. 서울시는'아이리스'촬영을 위해 광화문 일대를 12시간이나 통제했다. 시민의 발을 묶은 데 대한 변은 서울 홍보, 곧 외국 관광객이 구름처럼 몰려오게 하기 위한 도시마케팅 전략이라는 것이다. 예정대로라면 머지않아 각국에서 광화문광장을 보기 위해 관광객이 밀려들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가보고 싶어하는건 총소리 요란한 테러범 소탕 현장이 아닌 꿈같은 사랑과 낭만의 장소다. 어쩌면 오라는 서울엔 오지 않고 그림같은 설경 속에 사탕키스가 이뤄진 아키타만 찾아가는 사태가 빚어질 지도 모른다. 어쩌랴.총격전 장소라도 둘러 보려는 이들을 기다리는 수밖에.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