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지난해,그리고 지지난해가 그랬듯이 올해도 참 탈도 많고 일도 많았습니다. 미국발 경제위기의 여진은 일년 내내 우리 경제를 못살게 굴었습니다. 최근엔 중동발 위기로 번지는 듯해 서민들의 가슴을 또 한번 철렁거리게 했습니다. 신종플루는 또 어땠나요. 경제위기와 함께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넣었습니다. 세종시 건설과 4대강 개발을 둘러싼 논란으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았습니다.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들이 우리 곁을 많이 떠난 안타까운 한 해였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노무현 전 대통령,김수환 추기경 등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분들이 세상과 작별했습니다. 석 달 새 전직 대통령의 장례식을 두 차례나 치른 국민들의 슬픔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겠죠.특히 노 전 대통령의 사망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종교 지도자이기보다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인 김 추기경 선종 땐 추모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비록 이들은 빈자리를 남긴 채 떠났지만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사랑과 용서 그리고 화해입니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를 유언으로 남긴 김 추기경.생전 온몸으로 사랑을 가르친 그는 마지막 가는 길에도 사랑과 감사의 말로 국민화합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각막기증으로 두 사람에게 환한 빛을 선사해 장기기증문화에도 큰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지난 11월 말까지 전국 병원,공인장기기증 등록단체 등에 이름을 올린 장기기증 희망자가 지난해의 2.4배인 17만7000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장기기증운동이 시작된 이래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두 전직 대통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치적 이유 등으로 한때 갈등과 반목의 중심에 서기도 했지만 결국 우리에게 남기고 간 것 역시 사랑과 화해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화 동지이자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극적인 화해를 이끌어냈죠.비록 병상에서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두 사람 간 반세기 가까운 애증을 말끔히 씻어내기엔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병문안 후 '화해한 것으로 봐도 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렇게 봐도 좋죠.이제 그럴 때도 온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오랜 앙숙이었던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도 화해의 악수를 나눴습니다. 아마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낡고 무거운 짐을 훌훌 털고 가벼운 마음으로 떠났을 겁니다.

노 전 대통령은 우리 사회에 많은 숙제를 던져줬지만 그의 마지막 말은 용서와 화해로 정리됩니다. "너무 슬퍼하지마라.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마라.누구도 원망하지마라."

흔히들 죽음은 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결코 끝이 아닙니다. 2009년 12월31일이 지나면 2010년 1월1일 새해 아침이 밝아오듯이 말입니다. '갈매기의 꿈'을 쓴 리처드 바크는 "애벌레가 세상의 끝이라고 말하는 것을 조물주는 나비라고 부른다"고 했습니다. 올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슬픔을 새해엔 사랑과 화해라는 나비의 화려한 날갯짓으로 승화시켜야겠죠.그것이 먼저 가신 분들을 위해 남아있는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요.

김수찬 오피니언부장 ksc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