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으로 본 2010년 國運] 60년만의 白虎띠…나쁜 기운 막아주는 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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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만년 민족과 함께한 호랑이
경인(庚寅)년 호랑이 해가 밝았다. 호랑이(寅)는 병인(丙寅) 무인(戊寅) 경인(庚寅) 임인(壬寅) 갑인(甲寅)의 순으로 육십갑자를 순환한다. 방향으로는 동북동,시간으로는 오전 3~5시,달로는 음력 1월을 지키는 방위신이자 시간신이다.
특히 올해 호랑이띠는 60년 만에 맞는 백호(白虎)띠라고 해서 사람들의 기대가 크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은 "정해년(2007년)이 황금돼지띠라는 것은 근거가 없었지만 경인년의 경(庚)은 흰색과 서쪽,금을 뜻하기 때문에 올해가 60년 만의 백호 해라는 얘기는 맞다"고 밝혔다. 또 "백호띠가 다른 띠보다 더 좋다는 근거는 없지만 우리 민속에서 호랑이는 산신령 및 산군자(山君子)로 통하는 신앙의 대상이자 중국의 용,인도의 코끼리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동물"이라고 덧붙였다.
호랑이는 우리 역사와 언제나 함께 했다. 단군신화에는 곰이 호랑이를 제치고 사람이 된 것으로 나오지만 우리 역사에 자주 등장한 동물은 호랑이였다. 산이 많은 한반도에는 일찍부터 호랑이가 많이 산다고 해서 '호랑이의 나라'로 불렸을 정도다.
지금까지 알려진 국내 최초의 호랑이 관련 유적인 경남 울주군 대곡리 바위그림에는 14마리의 호랑이가 묘사돼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와 고려시대 석관의 사신도에는 백호(白虎)가 등장한다. 또 조선시대 능묘에는 석호(石虎)를 배치했다. 호랑이는 서쪽 방위를 지키는 신수(神獸) 또는 산신으로 숭배됐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영물(靈物)로서 오래 전부터 신앙과 숭배의 대상이었다. 마을 뒷산의 산신각에 모신 산신도가 그 증거다. 호랑이는 통상 사람 모습의 산신과 함께 그려져 있는데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산신의 사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주변의 나쁜 기운을 막아 주는 이로운 존재로 알려졌다. 그래서 매년 정초가 되면 호랑이의 그림을 대문에 붙였고,물 · 불 · 바람의 삼재(三災)를 막기 위해 호랑이 부적을 붙이기도 했다. 시집 가는 신부의 가마 위에 호랑이 가죽을 얹고,어린 아이의 머리쓰개나 바둑판,베갯모 등에 호랑이 문양을 넣은 것도 같은 이유다.
이야기와 그림,속담의 소재로도 호랑이는 인기다. 육당 최남선이 조선을 '호담국(虎談國)'이라고 했을 만큼 호랑이 이야기가 많다. 신라의 알천이 경주 남산에서 호랑이의 꼬리를 붙잡아 땅에 메쳐 죽였다는 이야기,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어릴 때 범이 와서 젖을 먹였다는 이야기 등 '호담'은 끝이 없다. 호환(虎患)이나 호랑이 사냥에 대한 기록도 많다.
그렇다고 마냥 무섭기만 한 존재는 아니었다. 곶감이 겁나 줄행랑 치는 호랑이,이빨이나 발톱이 빠진 호랑이는 우스개의 단골 소재였고,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였던 '호돌이'는 귀엽고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호랑이의 나라' 한국의 산천에는 이제 호랑이가 없다. 그러나 호랑이의 용맹과 지혜,늠름한 기품은 호랑이 해를 맞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덕목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특히 올해 호랑이띠는 60년 만에 맞는 백호(白虎)띠라고 해서 사람들의 기대가 크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은 "정해년(2007년)이 황금돼지띠라는 것은 근거가 없었지만 경인년의 경(庚)은 흰색과 서쪽,금을 뜻하기 때문에 올해가 60년 만의 백호 해라는 얘기는 맞다"고 밝혔다. 또 "백호띠가 다른 띠보다 더 좋다는 근거는 없지만 우리 민속에서 호랑이는 산신령 및 산군자(山君子)로 통하는 신앙의 대상이자 중국의 용,인도의 코끼리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동물"이라고 덧붙였다.
호랑이는 우리 역사와 언제나 함께 했다. 단군신화에는 곰이 호랑이를 제치고 사람이 된 것으로 나오지만 우리 역사에 자주 등장한 동물은 호랑이였다. 산이 많은 한반도에는 일찍부터 호랑이가 많이 산다고 해서 '호랑이의 나라'로 불렸을 정도다.
지금까지 알려진 국내 최초의 호랑이 관련 유적인 경남 울주군 대곡리 바위그림에는 14마리의 호랑이가 묘사돼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와 고려시대 석관의 사신도에는 백호(白虎)가 등장한다. 또 조선시대 능묘에는 석호(石虎)를 배치했다. 호랑이는 서쪽 방위를 지키는 신수(神獸) 또는 산신으로 숭배됐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영물(靈物)로서 오래 전부터 신앙과 숭배의 대상이었다. 마을 뒷산의 산신각에 모신 산신도가 그 증거다. 호랑이는 통상 사람 모습의 산신과 함께 그려져 있는데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산신의 사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주변의 나쁜 기운을 막아 주는 이로운 존재로 알려졌다. 그래서 매년 정초가 되면 호랑이의 그림을 대문에 붙였고,물 · 불 · 바람의 삼재(三災)를 막기 위해 호랑이 부적을 붙이기도 했다. 시집 가는 신부의 가마 위에 호랑이 가죽을 얹고,어린 아이의 머리쓰개나 바둑판,베갯모 등에 호랑이 문양을 넣은 것도 같은 이유다.
이야기와 그림,속담의 소재로도 호랑이는 인기다. 육당 최남선이 조선을 '호담국(虎談國)'이라고 했을 만큼 호랑이 이야기가 많다. 신라의 알천이 경주 남산에서 호랑이의 꼬리를 붙잡아 땅에 메쳐 죽였다는 이야기,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어릴 때 범이 와서 젖을 먹였다는 이야기 등 '호담'은 끝이 없다. 호환(虎患)이나 호랑이 사냥에 대한 기록도 많다.
그렇다고 마냥 무섭기만 한 존재는 아니었다. 곶감이 겁나 줄행랑 치는 호랑이,이빨이나 발톱이 빠진 호랑이는 우스개의 단골 소재였고,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였던 '호돌이'는 귀엽고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호랑이의 나라' 한국의 산천에는 이제 호랑이가 없다. 그러나 호랑이의 용맹과 지혜,늠름한 기품은 호랑이 해를 맞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덕목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