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보 100보는 같을까? 다를까?"

전쟁터에서 적을 피해 50걸음 도망간 병사가 100걸음 도망친 병사를 향해 "야! 이 비겁한 놈아"라고 한다면 그건 우스갯소리가 됩니다.

그 놈이 그 놈인 상황, 즉 피장파장이니까요.

하지만 기업을 사고 파는 상황(기업인수합병*M&A)에 이를 적용해 본다면 50보와 100보는 천양지차인 듯 합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식민체제에 들어간 1998년 그룹 해체란 운명을 맞은 대우의 초대형 계열사인 대우건설과 대우조선해양을 각각 M&A한(추진한) 금호와 한화 그룹의 '뒤끝'이 그런 모양새를 보이고 있습니다.

우선 한화그룹의 사례입니다.

한화는 지난 2008년 산업은행과 6조3000억원에 대우조선해양을 M&A키로 양해각서에 서명했습니다.

하지만 곧 한화는 각서 내용을 이행하지 못하겠으니 대금 지급기간을 연장해 달라고 산은측에 요청했습니다.

지난해 발생한 미국 뉴욕 월가 발 금융위기로 인해 인수 자금을 마련할 길이 막혀버렸기 때문이란 이유를 댔고요.

그러나 이 제안은 지난 1월 산은측으로부터 거부당했습니다.

한화측은 당시 대우조선해양을 자신 계열사로 포함시키기 위해 50보 정도의 걸음을 떼기는 했지만 '울며 겨자먹는 심정'으로 결국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 상황에서 자신 능력을 넘어서는 '무리수'를 두지는 않은 것이지요.

한화는 이에 따라 최악의 경우 이행 보증금으로 산은 등에 냈던 3150억원을 날릴 아픔을 지금 겪고 있기는 하지만 당시 포기가 결코 나쁜 선택이 아니다란 분석이 최근 업계로부터 나오는 실정입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12월 30일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한화가 당시 무리를 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했다면 어떤 결과가 빚어 졌을까"란 의문을 표시했습니다.

이 관계자의 의문은 이날 대우건설을 M&A했던 '금호그룹의 운명'을 지목하며 제기한 것이고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3년반 전인 2006년 6월 자산관리공사로부터 국내 최대 건설업체인 대우건설을 6조4000억원에 M&A하며 계열사로 편입시켰지요.

금호는 이 M&A 한방으로 재계서열 10위권 안(8위)으로 진입하며 화려한 비상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고요.
당시 금호는 대우건설 M&A에서 100보의 완전한 걸음을 한 셈입니다.

하지만 금호그룹은 오늘 주력계열사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 결정됐습니다.
이는 금호가 대우건설을 인수할 때 지급한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짐'으로 작용한데서 비롯했다는 분석입니다.

금호는 이 자금의 상당부분을 빚으로 해결했었지요. 인수한 대우건설의 주가상승을 기초로 해 빌렸다는 얘깁니다.

대우건설 주가는 금호의 당초 예상과 달리 지난해 발생한 금융위기 여파로 되레 큰 폭으로 떨어졌습니다.

다급해진 금호는 대우건설을 되팔기로 했지만 이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게 된 것입니다.그 결과 주력사의 워크아웃 돌입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금호그룹의 대우건설 M&A 과정과 결과를 보면 얼마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돼지를 삼켰다가 배가 터져버린 보아뱀을 찍은 외신 사진'을 연상시킨다"고 했습니다.

M&A계에선 회자되는 말이 있습니다.

'승자의 저주'라는 건데요.

M&A 경쟁에서 승리한 자에게 뒤에 불행한 일이 닥치는 사례가 많기 때문입니다.

뭐 다른 비유를 할 것도 없이 한화와 금호의 사례가 대표적으로 꼽히겠지요.

한화는 대우조선해양의 인수를 추진할 때 포스코 현대중공업 GS그룹 등과 치열한 경쟁을 펼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승자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또 금호는 유진그룹과 경쟁을 해 대우건설의 최종 인수자가 됐고요.

이 두 회사의 상황만 놓고 본다면 한화는 작은 저주를 받은 셈이고 금호는 큰 저주를 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대우조선해양이나 대우건설은 과거 김우중 회장이 이끈 대우그룹의 중추 계열사들입니다.

그런데 대우 계열사들의 M&A는 왜 이처럼 결과가 좋지 않게 끝나 버릴까요?

업계 관계자는 "이 것 혹시 그룹 해체 이후 5년간 해외로 떠돌았던 김우중 회장의 '저주'가 낀 것 아닌가요?"라고 괴담성에 가까운 추측을 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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