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로고프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57)는 체스(서양 장기) 천재다웠다. 그의 두뇌 속에는 세계경제 분석과 시나리오가 가득 그려져 있었다.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교수실에서 만난 로고프 교수는 국가 부채 위기론부터 달러 가치와 미국 금리의 향방,세계경제의 불균형과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에 이르기까지 막힘이 없었다.

▶지난 9월 '금융위기에서 부채위기로'란 칼럼을 통해 국가 부채 위기를 경고했다. 최근 국가 부채 위기를 맞은 그리스와 두바이를 모니터링해 왔나.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국가 부채 위기는 고전적인 패턴의 위기다. 역사상 국제 금융위기가 닥친 뒤 수년 이후 국가 부채 위기가 찾아왔다. 타이밍을 예측하긴 어렵지만 2~3년 후든, 그 이후든 국가 부채 위기가 본격 발생할 것으로 확신한다. "

▶지난해 10월 발간한 '이번에는 다르다'는 공저를 통해 그리스 예를 지적했는데.

"그리스는 역사적으로 국가 부채 상환 기록이 최악인 국가 가운데 하나였다. 1829년 독립할 때부터 국가 부채가 디폴트(부도) 상태였다. 독립국가로서의 역사 중 50%가 디폴트 상태에 빠져 있었다. 1960년대 디폴트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남미 국가보다 국가 부채 문제가 심각했다. "

▶경제위기의 원인이 역사적으로 유사하다는 책의 분석과 달리 '우리는 정말 다르다'고 주장하는 국가가 있나.

"현재 중국이 그런 신드롬에 깊숙이 빠져 있는 것 같다. 중국은 대규모 자산가격의 인플레와 신용 거품,투명성 결여 등의 문제가 있어 위험스럽지만 '우리는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르다'고 한다.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은 개발 초기에 신용시장을 억제해 금융위기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점점 부가 늘어나면서 고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금융시장을 풀어놓게 된다. 중국 정부 역시 신용시장의 자유화를 허용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

▶미국도 공공 및 민간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약 350%에 달해 비극이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금융사 지원과 경기 부양 정책으로 경제는 회복되고 있지만 부채와 재정적자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이를 해결하려는 정치적 의지는 약하다. 심각하지만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지 않을 때까지는 위기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하기 힘들다. 5~10년 내 가까운 시기에 부채 위기에 빠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

▶1조달러를 웃도는 미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를 줄일 해법은 없나.

"미국 내에서는 당장 재정적자를 해소할 현실적인 해법이 없다고 봐야 한다. 세금을 크게 올려 살아남은 정치인은 아무도 없다. 세금을 인상할 필요가 있지만 공화당 의원들은 하나같이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소수의 부자에게 정부의 부채와 각종 프로그램의 재원을 지불하라고 말하고 있지만 턱도 없이 부족하다. 세수가 연간 20% 늘어나야 적자를 메울 수 있다. "

▶부채와 재정적자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통화정책과 달러가치에 미치는 영향은.

"통화정책에 많은 압력을 가할 것이다. FRB의 금리 정책에 따라 이자비용은 더 불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정부 예산에 즉각적인 타격을 준다. 재정적자는 장기적으로 FRB의 통화정책과 독립성을 시험할 것이다. 아시아국가들이 미국의 국채를 보유하는 일이 아주 좋은 투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달러 가치도 점점 하락하고 있다. 미국 국채는 더 이상 안전한 투자처가 아니다. "

▶일각에서는 달러 가치가 50엔대로까지 하락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가능성이 있다. 엔보다는 중국의 위안화와 비교해 보자.달러에 묶여 있는 위안화의 가치는 자유화될 경우 순식간에 100%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 20~30% 절상되는 게 아니라 두 배로 높아진다는 말이다. 엔화 가치는 자유화가 되면서 1975~1995년 사이 300%나 올랐다.

신흥국 대부분의 통화가치도 상승할 것으로 본다. 원화는 한때 고평가됐다가 다시 그보다 더 큰 폭으로 저평가됐다. 지금은 상당히 가치가 떨어진 상태다.

한국은 이번에 큰 위기를 겪지 않았다. 원화는 장기적으로 '완만하게(gentle)' 절상될 것으로 예상한다. 경제 성장과 함께 정상적인 상승 트렌드를 타고 있다. 변동성은 크지만 2050년께 원화 가치는 달러에 대해 두 배 상승할 것으로 본다. "

▶미국의 원화 절상압력을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인가.

"원화는 아시아 통화 가운데 가장 탄력적인 통화 중 하나다. 미국에서 원화 가치 절상에 대한 논란은 절대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미국 정부가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준하지 않고 있지만 비준 문제와 원화 통화정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

▶세계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는.

"달러의 세계 기축통화 지위는 오래 갈 것이다. 하지만 갈수록 가치가 떨어져 미국은 더 높은 이자를 지불하고 빚을 질 수밖에 없다. 이르면 10년 후 미국이 저금리로 해외에서 돈을 꿔오는 특권은 사라질 전망이다.

달러가 영국의 파운드화를 대체했듯이 중국이 내부적으로 붕괴되지 않는 한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해 기축통화가 될 것이다. 중국이 금융위기를 맞더라도,아니 두 번의 금융위기를 맞더라도 위안화는 달러를 대체할 게 분명하다. 다만 소요 기간을 50년 후쯤으로 본다. "

▶상업용 부동산 대출 부실 등으로 인해 경기가 다시 침체할 것이라는 '더블 딥' 우려가 나오고 있는데.

"관련 대출에서 5000억달러 정도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되나 충격은 흡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FRB가 금리를 너무 일찍 올리지 않는다면 더블 딥은 발생하지 않는다. "

▶FRB는 '상당 기간'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겠다고 했다. '상당 기간'을 해석한다면.

"최소한 1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금리를 0.25%포인트만 올려도 미국 경제가 져야 할 부담은 상당하다. 부채가 많아 이자비용이 크게 늘어난다. 금리 수준을 연 3~4%로 급속히 정상화하면 제2의 경기 침체가 올 수 있다. 지금과 같은 미국 경제의 회복 수준으로는 그런 금리를 못 버틴다. FRB는 인플레를 금리 인상의 기준으로 삼을 것으로 본다. "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경제위기를 세계경제의 불균형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세계경제의 불균형을 해소하지 않으면 10년이나 15년 후 다시 경제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 미국은 저축률을 높이고 부채를 줄여야 한다. 금융감독 체계도 개혁해야 한다. 단순히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절상시킨다고 무역 불균형이 해소되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

▶중국은 미국의 위안화 절상 요구에 맞서 미국 국채를 지렛대로 사용하고 있는데.

"중국이 미국 국채를 대거 내다팔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중국의 국채 매입 중단 선언은 국채시장을 일대 혼란에 빠지게 할 수 있다. 국채 금리가 2~3%포인트 치솟게 될 공산이 크다.

미국은 한국 중국 중동 국가들에 국채를 더 사라고 압력을 넣어야 하는 등 어려움을 맞을 수 있다. 만일 중국이 국채를 대량 매도한다면 세계경제는 다시 침체로 나가떨어지게 된다. 다만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들은 보다 독립적으로 사고하고,미 국채를 반드시 사야 한다는 의무감이 줄어들 수도 있다. "

▶미국은 한 · 미 FTA 비준을 미룬 채 자동차 부문의 무역 불균형 해소를 요구하고 있다.

"보호주의일 뿐이다. 미국이 한 · 미 FTA를 비준하지 않는 것은 황당하다. 집권 민주당의 '가장 지저분한(ugliest)' 정치 행태 중 하나다. 노조는 사양산업의 일자리를 보호하려 하고 있다. 미국은 15년 뒤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경쟁력을 잃을지도 모른다. 가장 우려하는 악몽은 1년 뒤에도 실업률이 10%대를 유지하는 상황이다. 높은 실업률은 미국 정부의 과격한 보호무역주의를 부추길 수 있다. "

▶오는 11월 서울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린다. 한국의 역할을 조언한다면.

"G20 정상회의는 아이디어 회의다. '지적인(intellectual)'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아젠다와 관련한 아이디어를 적극 내놓아야 한다. 개최국으로서 누릴 수 있는 이점이다.

한국은 아직 덩치가 작은 탓에 정치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기가 어려우나 지적인 리더십은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장소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외교,경제,사회,기후변화 등 분야에서 국제적인 신뢰를 쌓을 수 있어야 한다. "

케임브리지(미국)=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

케네스 로고프 교수는…

케네스 로고프 교수는 환율 금융 통화 등의 국제 거시경제와 국가 부채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예일대 시절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 교수 밑에서 수학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내면서 현실감각을 키운 국제통이다.

'이번에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는 공저에서는 과거 경제위기의 반복적이고 공통된 주요 원인이 국가와 금융권,소비자의 과도한 부채 쌓기라고 지적했다. 체스의 달인인 그는 25세 때 인터내셔널 그랜드마스터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주요 약력: △미 MIT대 박사(1980)△FRB 이코노미스트(80~83)△UC버클리대 교수(89~91)△프린스턴대 교수(92~94)△하버드대 교수(99~현재)△IMF 수석 이코노미스트(2001~2003).주요 저서: △국제경제학 핸드북(1995)△국제거시경제 근간(1996)△국제거시경제 워크북(1998)△이번에는 다르다(2009)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