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대부분 국가 손 들어줘
◆도로관리 책임 묻기 쉽지 않아
지방자치단체 한국도로공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는 운전자들은 빙판길을 방치하거나 위험표지판을 설치하지 않은 책임이 도로관리 주체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판례는 도로관리 주체보다 운전자에게 책임을 묻는 게 일반적이다.
2008년 1월 이모씨는 경기도 용인에서 차를 몰고 가다 빙판길에 미끄러져 교각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이씨의 보험사 측은 재판에서 "용인시가 도로 상태 점검과 제설 조치를 취하는 데 소홀히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큰 눈이 오는 것은 자연현상이기 때문에 위험의 정도와 시기를 예측하기 어렵다"며 용인시 측의 손을 들어줬다.
충북지역에 폭설이 내린 2006년 2월 빙판길 사고를 당한 이모씨가 충청북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도 재판부는 "사고 전에 폭설이 내렸고 결빙이 예상됐던 만큼 이씨가 속도를 줄이고 주의했어야 한다"고 판결했다.
다만 도로관리 주체의 과실이 중요하고 명백할 경우 손해배상을 받는 경우도 있다. 2008년 1월 경기도 광주 43번 국도에서 택시가 빙판길에 미끄러지면서 반대편 차량을 들이받은 사고에서 재판부는 국가의 책임을 60%로 인정했다. 배수구가 막혀 비가 9㎜ 정도 왔을 뿐인데도 도로가 얼어붙었고,중앙분리대가 약해 사고가 커졌다는 점을 받아들였다.
◆눈길이라도 안전조치 취해야
안전조치 없이 스노 체인을 장착하거나 차량을 고치려다 사고를 당한 경우 피해자 또한 부주의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춘천지법 강릉지원은 2005년 8월 눈이 오는 중에 갓길에서 차량 뒷바퀴에 체인을 장착하려다 달려오던 차에 치여 숨진 황모씨에 대해 10%의 사고 책임을 물었다. 1차적인 책임은 가해 차량에 있지만 피해자 측도 갓길 정차시 안전판을 설치하는 등 예방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는 취지다.
눈길에 비상등을 켜놓고 도로 중간에 서 있다가 사고를 당한 피해자에게 사고 책임의 40%를 물은 판례도 있다. 수신호를 하거나 고장표지를 설치하지 않은 피해자의 과실을 인정했다.
눈길이라도 교통사고 가해 차량의 민 · 형사상 책임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대전지법 공주지원은 2006년 4월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던 차를 들이받은 사고를 낸 운전자에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기후 요인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고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을 인정하더라도 노면이 미끄러울 땐 제동장치 조작에 주의를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전지법 논산지원도 2004년 4월 눈길 교통사고를 내 피해차량 운전자에게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힌 뒤 별 조치 없이 사고 현장을 떠난 이모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