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분당에 사는 회사원 조모씨(38)는 폭설이 내린 4일 아침 서울 출근길에 무려 4시간을 허비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새벽에 눈이 내린 것을 확인한 조씨는 평소보다 조금 이른 오전 6시40분 집근처 정류장에서 서울행 좌석버스에 올랐다. 조금 막히기는 하겠지만 출근시간대 서울~분당구간에 버스전용차로가 시행돼 '고속도로만 진입하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 평소엔 목적지인 서울 충정로역 근처까지 1시간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조씨의 계산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빗나가고 말았다. 휘날리는 눈발과 새벽부터 쌓인 눈으로 도로가 얼어붙으면서 버스는 거의 서있다시피했다. 분당 시내를 1시간이나 걸려 통과한 버스는 7시40분이 돼서야 겨우 판교 톨게이트 근처에 다다랐다. 조씨는 '잘하면 8시30분 시무식에 늦지 않겠다'는 희망을 품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차량들이 눈길 위에서 어지럽게 뒤엉켜버리는 바람에 버스가 톨게이트 근처에서 1시간 넘게 꼼짝도 못했다.

조씨를 태운 버스 운전기사가 앞서 출발한 버스 기사와 무선으로 한참 통화한 뒤 승객들에게 소리쳤다. "5시40분에 분당을 떠난 버스가 아직 한남대교(고속도로가 끝나는 지점)까지도 못 갔답니다. 여기서 내려 지하철 타시는 게 낫겠습니다. " 8시40분께 버스에서 내린 조씨가 지하철역까지 눈길을 헤치며 30분 넘게 걷고, 서현역(분당선)→수서역(3호선)→을지로3가역(2호선)→충정로역을 거쳐 회사에 도착한 시간은 10시40분 남짓.지하철도 운행이 지연되긴 마찬가지였다. 9시로 늦춰진 시무식도 이미 끝난 뒤였다.

새해 첫 출퇴근길이 '고난의 대장정'으로 변했다. 사상 최대 눈이 내린 서울지역의 경우 새벽부터 내린 폭설에 기온마저 영하권에 머문 탓에 시내 대부분 도로가 얼어붙어 빙판길이 돼버렸다. 차량은 거북이걸음으로 기어다니다시피 했고 시내 곳곳의 경사길에서는 헛도는 바퀴 때문에 차가 서로 뒤엉켜 극심한 혼잡을 빚었다. 서울 중구 퇴계로에서 한남동 방면의 남산 1호 터널과 3호 터널에서는 차량이 거의 움직이지 못해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육상교통망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지하철도 눈폭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교통혼잡을 예상한 시민들이 출퇴근길에 대거 지하철로 몰리면서 '지옥철'이 돼버렸다. 버스에서 지하철로 갈아타려는 인파들로 인해 지하철 입구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빚어지기도 했다.

실제 이날 오전 10시께 교대역부터 삼성역까지 세 정거장을 가기 위해 1시간 이상 걸린 경우도 있었다. 사람이 너무 몰린 탓에 여섯 차례나 지하철을 타지 못하고 그냥 보냈기 때문이다. 안모씨(31)는 "열차 안은 손발을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였고 열차가 고장났다는 방송이 쉼 없이 들려와 너무 짜증났다"고 전했다.

수원에서 7시35분께 지하철 1호선 급행전철을 탄 이모씨(47)는 2시간 뒤인 9시35분 구로에 도착했다. 이 전동차는 전기 고장과 출입문 고장을 거듭한 끝에 결국 구로에서 멈춰섰다. 그곳에서 청량리행 전동차로 갈아탄 이씨는 목적지인 서울역에 10시25분께 도착했다. 이씨는 "평소 50분거리인 수원에서 서울역까지 무려 2시간 50분이 소요됐다"며 "승용차로 출근하면 지각할 것 같아 지하철을 이용했는데 지하철도 마찬가지였다"고 혀를 내둘렀다.

퇴근길도 순탄치 않았다. 날이 저물자 도로가 빙판길로 변하면서 버스 운행시간은 평소보다 3배 이상 걸렸다. 버스 이용객이 늘어난 데다 배차 간격도 일정치 않아 승강장마다 대기 승객들이 몰렸다. 지하철도 퇴근길 직장인들이 몰리면서 1호선 등이 심하게 붐볐다. 수원에서 출퇴근하는 직장인 김호철씨는 "출근 때처럼 퇴근 때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우려한 일부 동료들은 회사 근처에서 자고 바로 회사로 나간다고 했다"고 전했다. 일부 기업은 직원들의 퇴근길을 돕기 위해 평소보다 1시간 빨리 업무를 마쳤다.

주용석/김병일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