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매니지먼트] 차곡차곡 쌓인 '특근비 통장'이 폭스바겐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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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의 新노사협력
글로벌 경제 위기로 세계 자동차산업은 홍역을 치렀다. 도요타 GM 등 내로라하는 자동차업체들이 휘청거렸다. 하지만 위기를 뚫고 더욱 성장한 기업이 있다. 현대 · 기아자동차도 그렇지만 독일 폭스바겐의 성장세는 눈부시다. 지난해엔 일본 스즈키자동차를 인수하기로 결정,단번에 세계 1위 자동차 업체로 우뚝 설 발판을 마련했다.
폭스바겐이 이처럼 질주할 수 있는 비결은 과거 위기에서 얻은 교훈 덕분이다. 1993년과 2003년 두 번의 위기를 거치면서 폭스바겐은 특유의 경영 방식을 이끌어냈다. 모든 모델을 갖춰 고객에게 선택권을 넓혀줬다. 하나의 플랫폼을 개발,여러 종류의 자동차에 사용해 비용을 줄였다. '근로시간계좌제' 등을 도입해 협력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한 것도 도약의 발판이 됐다.
◆고객의 선택폭을 확 넓혔다
폭스바겐은 위기 돌파 전략으로 라인업 확대를 채택했다. 고객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1990년대 고급 세단인 페이톤을 출시했다. 2000년대에는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인 티구안과 소형 해치백인 스코다 파비아 등을 잇따라 선보였다. 1998년에는 벤틀리,람보르기니,부가티 등 최고급 브랜드를 차례로 인수했다. 소형차부터 최고급 세단까지 라인업을 확대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1996년 34개이던 모델은 2008년엔 56개로 늘어났다. 스즈키를 인수키로 한 것도 이런 전략의 연장선상에 있다. 자동차 구매자들은 '폭스바겐에 가면 원하는 어떤 차든지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다양한 브랜드를 갖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득수준 상위 5%를 겨냥한 벤틀리,람보르기니,부가티를 비롯해 상위 15%를 겨냥한 아우디,상위 35%를 대상으로 한 폭스바겐 등을 두루 갖췄다. 중 · 하위층을 겨냥해 스코다와 세아트도 내놨다. 폭스바겐이 보유한 브랜드만 스즈키를 제외하고도 11개에 달할 정도다.
◆생산 및 개발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폭스바겐은 연구 및 생산에서도 다른 자동차회사와 차별화된 전략을 취했다. 자동차의 기본 뼈대인 플랫폼 수를 축소한 것이 대표적이다. 플랫폼 수를 줄이면 비용을 감축할 수 있다. 하나의 플랫폼으로 여러 가지 모델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폭스바겐은 1990년대 초반 16개이던 플랫폼 수를 6개로 줄였다. 여기서 50여개의 모델을 생산하고 있다. 공용 플랫폼으로 생산하는 자동차가 전체의 86%를 차지할 정도로 플랫폼 공동사용이 자리잡았다.
폭스바겐은 한 발 더 나아가고 있다. 동일한 플랫폼을 적용할 경우 엔진 및 변속기를 포함한 차체하부를 공유하게 된다. 모델 간 차별화를 꾀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모듈화 플랫폼 전략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배기량이 다른 자동차들도 같은 플랫폼을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높은 현지생산 비중도 폭스바겐의 특징이다. 해외에서 판매되는 자동차의 90% 이상을 현지에서 생산하고 있다. 2008년 유럽에서 판매된 자동차의 95% 이상을 독일 이외 지역에서 만들었다. 아우디 스코다 세아트의 경우 100%를 현지에서 생산했다. 중국 및 인도시장에서도 현지생산 비율이 100%에 달한다.
◆협력적인 노사관계를 만들었다
1993년 폭스바겐은 위기를 맞았다. 최대 시장인 서유럽 시장 수요가 급격히 감소했기 때문이다. 폭스바겐은 당시 고(高)임금,저(低)생산성이라는 고비용 구조를 안고 있었다. 위기를 타개하려면 이 구조를 깨는 게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노조가 버티고 있었다. 노조는 구조조정을 완강히 거부했다. 폭스바겐은 이때 2년간 고용안정을 약속하는 대신 20% 임금삭감,워크셰어링(일감나누기) 도입,근로시간계좌제 도입을 이끌어냈다. 이 덕분에 폭스바겐은 협력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하면서 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유연성을 높일 수 있었다.
폭스바겐이 당시 도입한 근로시간계좌제는 지금도 선진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 제도는 특근 때 지급하던 시간외수당을 지급하지 않도록 했다. 대신 특근시간을 개인별 근로시간계좌에 적립한다. 적립된 근로시간은 조업단축 때 사용한다. 조업을 단축하더라도 적립된 근로시간만큼을 계산해 임금을 지급한다. 이로 인해 회사는 수요 변화에 따라 생산량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됐다.
특근 때 특근수당이 아닌 일상임금을 지급함으로써 비용도 줄일 수 있게 됐다. 근로자들도 불만이 없다. 조업이 단축되더라도 일정한 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어서다. 회사와 종업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제도다.
일감을 나누는 워크셰어링도 비슷한 효과를 냈다. 1994년 폭스바겐은 독일 내 근로자 15만명 중 3만명을 감원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단 9000명만 감원하는 데 그쳤다. 다양한 워크셰어링 도입으로 2만1000명은 해고를 면할 수 있었다. 이 같은 협력적 노사관계는 폭스바겐을 1위 자동차업체로 도약하게 만든 요인으로 꼽힌다.
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