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튈 것 같은 이미지를 예상했던 것 치고는 너무 평범해 보이는 학생이었다. 자그마한 키에 여드름도 적지 않았다. 지난 4일 인터뷰를 위해 한국경제신문 편집국을 찾은 채종민군(19 · 인천외고 3학년)은 이어폰으로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들어왔다. 채군을 만나 보기로 한 이유는 그의 범상치 않은 이력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한국문화인류학학술대회에서 외고의 일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로 성인들을 제치고 2위를 차지했다. 또 미국 시카고지역 청소년들과 지구 환경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화상회의를 개최했고 모의 유엔 회의에 참가하는 등 국제교류에도 열성적이다. 생물학자가 꿈인 그의 학교 성적은 중상위권.하지만 이번에 국내 대학 대신 일본의 쓰쿠바대학교 생물학과에 원서를 냈다.

수험생활 하면서 영화를 찍기 쉽지 않았을 텐데.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한국 학생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한계를 느낍니다. 국제중학교 외국어고등학교 명문대에 들어갈 때까지 끊임없이 줄이 세워지죠.집에서는 부모님 말,학교에서는 선생님 말에 따라 공부만 하다 보면 자기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를 모르게 돼요. 외고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능 공부에 지쳐서 친구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조차 피해요. 그런 외고의 모습들을 진솔하게 담고 싶었습니다. 6개월간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촬영을 하고 편집을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상까지 받게 되니 행복했어요. 근데 저는 나름대로 진지하게 만들었는데 심사위원들은 발랄하고 재치있다고 하시데요. 기획 의도가 틀렸나 봐요. "

▼지난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

"미국 청소년들과 환경문제에 대해서 토론하는 화상회의를 가진 적이 있어요. 그때 두 달 가까이 준비를 하면서 환경에 대한 서적들을 읽고 전문가들을 만나다 보니 그동안 환경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게 부끄러워지더라고요. 미국 학생들과 교류를 하면서 시야도 넓어진 것 같고요. 제가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려는 것도 이런 경험이 작용한 겁니다"

▼영어 일본어를 다 잘하는 모양이다.

"초등학교 때 처음 엄마의 손에 이끌려 영어학원엘 갔는데 원어민 발음이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똑같이 따라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이제는 제 생각을 영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요즘에는 미국 채팅 사이트에 들어가서 한국 문화를 알리는 일에 푹 빠져있어요. 한국 가요를 들려 주는 대화방을 만들었더니 굉장히 반응이 좋더라고요. 제가 모르는 신인가수까지 알고 있는 미국인들도 있어요. 특히 여성분들은 2PM,남성분들은 포미닛을 좋아해요. 일본어는 중학교 때 일본 드라마를 보면서 공부를 하게 됐어요. 관심을 갖고 독학을 했는데 일본 대학을 가게 됐으니 잘한 셈이죠."

▼왜 굳이 일본 대학교를 가려 하나.

"한국의 대학 강의를 청강한 적이 있었는데 학문을 진지하게 연구하기보다는 취업에 대비하는 분위기가 강하더라고요. 전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전통과 학문적 저변이 넓은 쓰쿠바 대학을 선택한 거에요. 우리나라 카이스트가 이 대학을 본따서 만들었다고 할 만큼 연구 인프라가 좋고 학비도 안 들거든요. 일본 입학시험 성적도 나쁘지 않게 나왔어요. "

▼부모님이 반대하셨을 것 같은데.

"당연히 반대하셨죠.국세청 공무원으로 계시는 아버지가 특히 그랬어요. 부모님은 제가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를 바라세요. 어렸을 때부터 고시를 보라고 말씀하셨죠.그래서 제가 학교 바깥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근데 아버지가 너무 무서워서 설득을 하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제가 하고 싶은 걸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드렸더니 그냥 포기하신 것 같아요. "

그렇게 자유로운 사고를 하게 된 배경이 있다면.

"책이죠.친구들이 백화점에 쇼핑을 가면 저는 청계천의 헌책방에서 시간을 보내요. 중학교 때는 자기계발을 하겠다며 경영학 관련 서적들을 읽었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심리학 관련 서적들을 봤어요. 요즘에는 무라카미 하루키나 황석영의 소설을 많이 읽어요. 끊임없이 관심이 옮겨가다 보니 보통 5권 정도의 책을 잡히는 대로 읽어요. 1시간 동안 책을 읽고나면 돌아서서 8시간을 생각하죠.그게 제 즐거움이예요. "

스스로 창의적이라고 생각하나.

"사람들은 도전과 창의를 헷갈려 하는 것 같아요. 도전에 성공했을 때만 창의적이라고 하는 거죠.제가 일본 유학을 가겠다고 하니까 다들 미쳤다고 하다가 일본어를 잘하고 입학 시험 점수가 잘 나오니까 창의적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일본 대학 진학 자체가 창의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식상한 말이지만 기존의 아이디어를 벗어나 새로운 생각으로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는 것이 창의적인 것 아닙니까"

자신의 미래를 위해 어느 정도 노력하나.

"저는 스스로 노력파라고 생각해요. 지난해에는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경제학과 심리학 능력을 측정해 보고 싶어서 AP프로그램(Advanced Placement:대학과목 선이수제)을 이수했는데 시험기간에는 며칠밤을 꼬박 새워가며 공부했어요. 결국 모두 통과했구요. 단순히 성적을 내기 위해서라면 못했겠지만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공부 자체가 너무 즐거웠어요. "

▼장래 희망은.

"일본에서 신재생에너지나 환경관련 기술을 배워서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요. 하고 싶은 직업은 아직 못 정했습니다. 저는 항상 흥미가 꽂히기를 기다렸다 거기에 몰두하는 편이에요. 언제 또 흥미가 바뀔지 모르니까 5년 뒤,10년 뒤 어떤 직업을 선택할지는 모르겠어요. 일단은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할 생각입니다. "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인재들은 어때야 하나.

"우선 돌파력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고시에 합격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자신과 가족들에게는 좋을 수 있지만 사회에는 크게 도움이 안 될 수 있잖아요. 창의적인 생각을 갖고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천재인 아인슈타인도 좋지만 간디처럼 사람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인재요. 제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

글=서보미/사진=허문찬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