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 5cm, 길이 3m 정도의 천으로 엄지발가락을 제외한 네 발가락을 발바닥에 닿을 정도로 구부러질 때까지 아래로 감는다. 그리고 나서 천을 뒤꿈치로 돌려 발의 앞과 뒤꿈치가 서로 마주보도록 단단하게 묶어 올린다. 발등이 활처럼 위로 구부러질 때까지 점점 더 세게 묶는다. 통증이 계속되고 피와 고름이 천에 배어든다. 살이 마르고 벗겨져 나간다. 때론 발가락이 한두개 물러서 떨어져 버리는 경우도 있다.



보통 전족을 마치면 발의 크기는 10cm 안팎이 됐다. 아주 ‘잘 만들어진’ ‘금련(金蓮)’은 발꿈치에서 발가락까지 겨우 7.5cm (극단적인 경우 5cm) 밖에 안돼 정상크기의 절반에도 크게 못미쳤다. 이후 고통은 완화되지만 전족을 한 여성은 일생동안 절뚝 거리며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는 것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보통 5살때 시작돼 뼈가 성장을 멈추는 18살때 완성되는 전족은 십여년의 세월을 요하는 발에 극단적인 고문을 가하는 자연산 하이힐이었다. 이에 따라 평생을 고통 속에 눈물로 보내며 어머니와 자신을 원망하는 글들도 적잖이 전해져 내려온다.

당말, 오대시대 궁정 무희로부터 유래했다는 전족은 전통시대 중국의 여자들에게 있어 어른이 되는 가장 고통스런 첫 단계였다. 이들 여인들은 보통 어머니에 의해 발이 묶이기 시작해 결국 평생 남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거동조차 할 수 없는 존재로 자라날 수 밖에 없었다.

원래 처음 무희들 사이에서 전족이 도입됐을 때는 예술적 효과를 노려 가볍게 발을 묶었다고 한다. 하지만 작은 발을 지닌 여성에 대한 기호가 높아지면서 전족 행위는 궁정 여성에게 퍼져나갔다. 궁정여인들이 발을 묶기 시작하면서 무희들과 경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같은 전족 관습이 일반민에게 확대된 것은 원나라 시대로 추정되며 명초에 이르게 되면 크고 자연스런 발을 지닌 여성은 조소의 대상이 될 정도로 대중화된다. 심지어 19세기에 이르면 중국 여성의 50∼80%가 발을 묶게 될 정도로 초대박 유행을 타게 된다. 한마디로 전족은 들에 나가 일할 필요가 없는 ‘있는’ 여성의 상징이 됐다.

반면 전족을 하지 않는 여성은 가난한 신분의 여성이던가 만주족이나 묘족 같은 소수민족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전족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됐던 하남이나 섬서에선 “걸인이나 물장수도 전족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중국 여인들이 전족을 한 이유는 주로 성적 매력 때문이었다고 한다. 남자들은 전족을 한 여성이 신고 있는 수놓인 작은 신발에 열광했고, 전족한 여성이 절룩거리며 걷거나 흔들리는 엉덩이를 보고 흥분했다고 한다. 전통시대 중국 남성들에겐 미모의 얼굴 못지않게 발이 작은 것이 절묘한 아름다움으로 통했다. “전족을 하면 못생긴 얼굴의 4분의 3은 보완할 수 있다”는 말도 나왔다. 또 ‘금련(金蓮)’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던 연꽃처럼 전족은 19금 행위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결국 중국에서 여성의 발은 남편만을 위해 보관돼야 했고, 오직 남편만이 아내의 신을 벗기고 발을 보고, 애무하고 씻기고 향을 입힐 수 있었다고 한다. 이어 작은 발은 아름다움의 대상에서 멈추지 않고 멋과 사회적 지위,교양의 상징으로 까지 격상됐다.

이같은 전족 보편화의 이면에는 여성의 행동범위를 크게 제한해 격리하려는 12세기 신유학의 이데올로기가 작용했다는 해석도 있다. 전족으로 가정에 묶일 수 밖에 없는 여성은 교육을 받을 필요도 없고, 집밖의 세상을 체험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무식해지고 시야가 좁아질 수 밖에 없는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고, 남성에 종속되는 존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쓸모없는 노리개를 먹여살릴 수 있는 남성의 부는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효과도 있었다.

기상관측 이래 최고의 폭설로 서울시내 교통이 한때 마비에 가까울 정도로 교통란을 겪었다. 지난 이틀 동안 미끌미끌한 언덕길을 어기저기 어정쩡하게 기어가듯 내려가고, 빙판길에서 휘청거리기도 여러번 했다. 무게중심을 최대한 낮추고 땅바닥만 보고 조심스레 걷고 있는데 문든 내 앞에서 젊은 여성분이 하이힐을 신고 총총 걸어가고 있는 놀라운 ‘신공’을 목격하게 됐다. 날카로운 힐로 마치 겨울 얼음벽 등산시 아이젠을 찍듯 빠르게 찍으며 흔들림 없이 눈길을 통과하는 모습은 ‘설악산을 하이힐 신고 올랐다’는 전설을 무색하게 할 지경이었다. 그 여성분이 왜 빙판길에 하이힐을 신고 나왔는지 연유는 모르겠으나, 나로선 하이힐 신공을 보면서 문득 전통시대 중국의 전족의 모습이 떠올랐다. 전족한 여인은 혼자서 돌아다닐 수 없지만‘현대판 전족’이라는 하이힐의 여인은 빙판길을 유유히 지나갔다는 게 차이겠지만 말이다.


<참고한 책>
로이드 E. 이스트만, 중국사회의 지속과 변화-중국사회경제사 1550-1949, 이승휘 옮김, 돌베개 2000
Patricia Buckley (Edited), Cambridge Illustrated History of China,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1
존 K. 페어뱅크·에드윈 O.라이샤워, 엘버트 M.크레이그, 동양문화사(상), 김한규 외 옮김, 을유문화사 1995
린다 손탁, 유혹, 아름답고 잔혹한 본능, 남문희 옮김, 청림출판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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