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미국경제학회 연례총회 마지막 날인 5일 '경제학자들은 왜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나'라는 주제를 놓고 토론이 벌어졌다. 참석자는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S&P케이스실러 지수를 개발한 것으로 유명한 로버트 실러 예일대 경제학 교수,토머스 사전트 뉴욕대 경제학 교수였다.

미국발 금융위기 가능성에 대해 미리 경고음을 내지 못한 자책감일까. 이들은 반성과 함께 변명을 내놓았다. 크루그먼 교수는 "경제학자들은 분명히 미국 금융시스템이 얼마나 허약한지 이해하지 못했고,금융 붕괴의 심각성을 포착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위기 대응도 "잘 하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상황을 치유하지 못할 토론의 수렁에 빠졌다"고 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대표적인 예로 지난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입안한 7870억달러 규모의 사상 최대 경기부양책을 둘러싼 논란을 들었다. "정부의 재정지출이 줄 충격에 대한 80년 된 오류의 부활이었다"면서 사치스러운 논란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이해하기 위한 광범위한 노력 대신 한 세대 전의 이론 논쟁만 다시 벌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러 교수는 학문으로서 경제학의 한계를 실토했다. 그는 "우리 직업은 지금 그리고 당장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기 예측 가능성이 낮았던 경제학자들(academic economist)과 그래도 예측력이 나았던 업계 경제전문가(business-oriented economist)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경제전문가들은 예측작업을 하면서 업계와 소비자들의 신뢰를 측정할 수 있는 주간 및 월간 데이터를 활용했다는 것이다. 사전트 교수는 일부 경제이론 모델들이 경기침체를 예측하는 데 도움을 줬지만 정책 입안자들과 정치인들이 이를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경제학 교수도 연례회의 개막일인 지난 3일 "주류 경제학에 중대한 오류가 있었다"면서 금융위기가 발생한 데는 경제학자들의 잘못이 크다고 시인했다.

그는 "경제 참가자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하고,금융시장이 경쟁적이고 효율적일 것이라는 전제가 오류였다"며 개인과 금융사 등 경제 주체들의 현실적인 행동에 근거하는 새로운 경제이론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일 수 있다"고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의 기본전제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런가 하면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 출신인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4일 총회에 참석해 금융위기의 주범인 주택시장의 거품이 FRB의 저금리 통화정책 탓이 아니라 허술한 규제 · 감독 탓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6일 버냉키의 해명을 '자아비판' 없는 자기방어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버냉키가 2005년 "주택 거품이 발생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했으며,2007년 5월에는 "FRB 관계자들은 (금융위기 진원지인)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나머지 경제 부문으로 심각하게 확산될 것으로 예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NYT는 이런 반성 없는 자만과 변명이 FRB 통화정책에 대한 감사 추진 등 의회의 적대감과 불신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