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지난해 매출 136조500억원(잠정치)을 올리면서 신기록을 세웠다. 영업이익도 10조9200억원으로 반도체 경기가 최고점을 찍었던 2004년(11조7600억원) 이후 가장 높은 실적을 거뒀다.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 소니 필립스 노키아 등 글로벌 경쟁업체들이 실적 하락의 늪에 빠진 가운데 거둔 성적이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올해는 '바닥 다지기'의 해다. 어떤 어려운 시장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난해 1월2일 신년사는 비장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소비가 뚝 끊긴 상황을 어떻게든 이겨내자는 게 신년사의 골자였다. 삼성전자는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비상경영으로 지난해를 시작했다. 모든 임원 연봉의 20%가량을 삭감하고 PS(초과이익분배금) 등의 성과급도 줄였다. 본사 직원을 현장으로 발령내며 조직 분위기도 일신했다.

임직원들의 불안감은 1분기 성적표가 나온 4월까지 이어졌다. 분기 실적을 발표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처음으로 영업손실이 났기 때문이다. 영업수지도 7400억원의 손실을 냈다.

삼성전자 경영진은 속도와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어수선해진 조직을 추슬러 나갔다.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불구,공격적으로 시장을 확대하는 전략은 그대로 유지했다. "점유율을 포기하면 내일이 없다"는 배수진을 친 것이었다.

반전의 계기는 예상보다 일찍 찾아왔다. 하반기에 들면서 소비심리가 빠르게 살아났고 '캐시카우(현금창출원)'인 반도체의 가격도 조금씩 회복됐다. 공격적인 시장전략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TV,휴대폰 등 주력 제품군의 시장점유율이 일제히 상승곡선을 그렸다. 영업과 마케팅 비용을 줄인 경쟁업체들의 시장을 파고든 결과였다. 특히 '돈만 쓰는 얼굴마담'이란 평가를 받았던 TV가 분기당 1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효자사업으로 변신한 게 삼성전자 부활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반도체와 LCD의 힘

4분기 삼성전자 실적은 완제품과 부품 부문의 합작품이다. LED(발광다이오드) TV와 프리미엄 휴대폰은 분기 기준 사상 최대 매출을 이끄는 선봉 노릇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이 두 부문의 영업이익은 전 분기보다 감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말 성수기 시장을 겨냥해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008년에도 4분기 중 전체 마케팅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1조9481억원가량을 투입했다.

견조한 영업이익은 반도체와 LCD(액정표시장치) 등 부품 부문이 만들어냈다. 반도체 부문은 D램 가격 상승의 덕을 톡톡히 봤다. 연초 1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던 DDR2 1기가비트(Gb) D램의 12월 상반기 고정거래가격이 2.38달러까지 상승했다. 처리 속도 등을 개선한 DDR3 D램의 수요 급증도 실적 개선에 도움을 줬다. 지난해 10월 윈도7 출시 이후 DDR3 D램을 적용한 고사양 PC의 수요가 빠르게 늘었다. 업계에서는 4분기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만 1조5000억원 선에 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적 악화가 점쳐졌던 LCD 부문도 당초 예상보다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적극적인 영업으로 중국 LCD 패널 시장 점유율이 급상승하면서 손실폭을 최소화했다는 설명이다. LCD 패널 가격 하락폭이 예상보다 작았던 것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승자독식 시대' 예고

삼성전자는 지난해 비축한 자본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공격적으로 시장을 확대하는 전략을 펼 계획이다.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은 7일 전자제품 전시회 'CES 2010' 개막에 앞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올해는 지난해와는 상전벽해라고 할 정도로 영업환경이 좋다"며 "모든 제품의 점유율을 전 세계 시장에서 절대우위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도 삼성전자의 올해 전망을 밝게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반도체 시황 전망이 나쁘지 않은 데다 LED TV 시장도 급팽창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반도체와 TV 분야 선두 업체인 삼성전자의 질주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