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려야 할 것

일본 아키타현의 온천마을인 뉴토 온천향의 쓰루노유 료칸(旅館).평일 낮시간인데도 관광객이 넘친다. 주말 예약은 4월 말까지 꽉 차 있다. 최근 한국에서 인기리에 방영한 TV 드라마 '아이리스'를 관광 상품화한 덕분이다. 이곳의 아이리스 관광 유발 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해 3월 단 3주간 이어진 현지 로케이션 때 경제효과를 2억엔(한화 약 27억원) 정도로 추산했던 교토통신 등 현지 언론은 드라마 전체로는 50억엔 이상의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한국에는 아이리스 특수(特需)를 살려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는 상품이 눈에 띄지 않는다. 아이리스 촬영장이었던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과 장지동의 가든파이브 등에 일본인들이 눈길을 보내는 정도다.

◆관광산업,이대론 안 된다

관광산업이 '고용 없는 성장시대'의 유력한 대안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관광산업의 취업유발계수(10억원 투자 시 신규고용 창출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는 52명으로 일반 제조업의 2배를 넘어선다. 관광산업은 제조업,IT산업과 더불어 세계 3대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10년 뒤에는 세계 관광객 수가 연간 16억명에 달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중국 일본 등 아시아권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관광산업 경쟁력이 열세에 놓여 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중국 관광객은 117만여명.중국 전체 해외관광객의 2.6%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상품이 단순 볼거리나 쇼핑 위주의 단조로운 체험관광인 데다 미국 유럽 등에 몰리는 관광 수요를 되돌릴 만한 매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어서다. 정부는 올해부터 향후 3년간을 '한국 방문의 해'로 정하고 관광객 유치를 본격화한다는 방침이지만,관광산업의 국제경쟁력은 31위에 머물러 있다.

우리가 자랑하는 설악산은 중국의 장자제(張家界)나 알프스의 웅장함을 당하지 못하고,다도해는 수려한 경관을 갖고 있으면서도 베트남의 하롱베이보다 덜 신비로워 보인다.

한국 특유의 역동성이 가장 잘 녹아있는 서울은 또 어떤가.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3대 관광지는 고궁이나 박물관이 아니라 명동,남대문 시장,동대문 시장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알카트라즈 섬이나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설국(雪國)'을 집필해 유명해진 일본의 유자와 온천마을,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안네 프랑크 하우스처럼 그 나라 국민들의 추억과 경험이 담긴 곳이 별로 없다. 없는 게 아니라 개발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쇼핑 관광은 향후 원화 가치가 올라갈 경우 퇴조할 수밖에 없다.

음식관광 역시 개발도상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음식 콘텐츠가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음식문화 체험시설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신용석 책임연구원은 "국내 129개 특급호텔 중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곳은 34개에 불과하고,일반 음식점들은 서비스와 품질관리가 제대로 안 된다"며 "향토 음식을 활용한 특성화 전략도 미흡하기 짝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형 '쇼프론'은 요원한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는 한국 의료진과 병원시설을 잘만 활용하면 의료관광도 대표적인 소프트 관광 상품으로 육성할 수 있다. 정부는 올해 5만명 수준인 해외 의료관광객을 2013년에는 20만명으로 늘리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정해놓았다.

충청북도는 오송첨단의료단지를 조성,동북아시아의 바이오 메디컬 허브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막상 이 같은 의료산업 경쟁력을 관광산업 활성화와 연계하기란 쉽지 않다.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이익집단 간 갈등을 조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많은 전문가들은 헝가리의 대표적인 의료관광지인 쇼프론의 경쟁력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쇼프론은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국경이 맞닿은 알프스산맥의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중세의 유서 깊은 도시로 출발하긴 했지만,10년 전부터는 전혀 다른 방면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과거 정적(靜的)인 관광지였던 쇼프론이 글로벌 치과 기술을 갖춘 동적(動的)인 의료특구로 탈바꿈한 것이다.

쇼프론이 매년 외국 환자를 대상으로 임플란트 및 치과 진료비로 거둬들이는 수익은 헝가리 GDP(국내총생산)의 10% 수준인 8000억원에 달한다. 면적 169㎢,인구 5만5000명의 소도시가 의료기술 특화로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셈이다.

의료관광은 한국의 대표상품이 되기에 충분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의료 관광객의 1인당 씀씀이는 일반 관광객의 3배에 달할 정도다. 치료 후 바로 돌아가는 치료 중심적 관광과는 달리 휴양，레저，보양，웰빙 등의 사업과 폭넓게 연계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인위적인 칸막이와 갖가지 규제를 혁파해야 한다.

▶▶ 채워야 할 것

"와~~~~짝짝짝~~~."

박수 소리가 우렁차다. 노란 한복을 맞춰 입고，빨간 꽃을 단 아가씨들의 춤사위가 현란하다. 한국 전통 풍물단 '아리랑파티 화랑패'의 공연이다. 주위를 둘러싼 구경꾼들도 어느새 흥에 겨워 몸을 흔든다.

이곳은 영국 스코틀랜드에서도 비교적 작은 도시인 에든버러.매년 8월만 되면 축제 분위기에 흠뻑 빠져든다. 세계 최대 규모의 종합공연예술축제 에든버러프린지 페스티벌 덕이다. 이 기간에는 에든버러 인구의 20배에 가까운 1100만명이 방문한다.

공식 초청장 없이도 극장 콘서트홀 학교 등 200여개 장소에서 2200여개의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에든버러의 장점은 진입장벽 없이 무한 경쟁할 수 있는 공연계의 '장'을 마련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185만9235장의 티켓을 팔아 관람료 수입만 2000만파운드(370억원)를 남겼다. 부가적 수입은 더 크다. 관람객의 공연 관람 숙식 쇼핑 등 파생 효과는 4억파운드(7500억원)로 추산된다. 하지만 축제 예산은 150만파운드(30억원)에 불과하다. 이것이 바로 '소프트 관광'의 매력이자，힘이다.

◆소프트 관광의 힘

조현재 문화체육관광부 관광산업국장은 "올해가 '기회의 골든 브리지'"라고 강조했다. 2010년 서울 세계디자인수도 축제부터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2012년 여수 세계박람회 등 굵직한 국제 행사가 잇따라 열리기 때문이다. 한국이 전 세계 GDP의 20%를 차지하는 '관광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은 우리의 강점을 최대한 살리는 '소프트 관광'에 있다. 고정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단순히 보여주기식 관광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이야기，역사，문화를 덧입혀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관광 패러다임을 좌우해 왔던 하드웨어 중심에서 벗어나 체험，서비스 등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변해야 한다는 말이다.

관광 산업에서 하드파워는 공항，역，지하철 등 교통수단과 숙박시설，테마파크，골프장 등의 위락시설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소프트파워는 스토리텔링(역사 영화 드라마)，가고 싶은 여행지，매력도 등이 해당한다. 소프트 관광은 관광객들이 콘텐츠에 빠져들어 중요한 순간에 몰입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연극에 비유한다면 무대는 소프트 관광지이고 배우는 관광객，대본은 콘텐츠가 되는 셈이다. 이 세 가지가 어우러져 하나의 큰 스토리를 형성하게 된다.

영화，드라마 등도 소프트 관광의 대표적 콘텐츠다. 영화 '반지의 제왕'이 뉴질랜드 경제에 미친 파급효과를 지칭해 '프로도 경제'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다. 2001년 반지의 제왕 개봉 이후 뉴질랜드의 외국 관광객 수는 연평균 5.6% 증가했다. 호빗턴 마을의 배경으로 사용된 마타마타 농장은 사유지를 개방해 33달러의 입장료를 받고 있다.

◆한국의 매력 속으로

한국의 소프트 경쟁력은 뭘까. 한국만이 가진 독특한 매력이면 무엇이든 활용 가능하다. 한국의 문화적 특성을 살린 뷰티산업，드라마 영화 등 한류，한식 문화，템플스테이 등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한식 관광 트레일 개발도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미식 관광열차 상품을 개발해 외국인 관광객의 지방 향토음식 관광을 촉진할 수 있다. 강원도 봉평 메밀관광 트레일은 이효석 문화관 방문，메밀꽃밭 관람，봉평시장 체험 및 쇼핑，메밀 음식 시식，메밀전 부치기 체험，우마차 타고 마을길 걷기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은 또 여성들의 관광 천국이라 할 수 있다. 아름다움을 가꾸는 뷰티산업(헤어，피부미용，네일아트)은 매력적인 관광 콘텐츠다. 2007년 한국을 방문한 일본 관광객 21.7%가 미용 서비스를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미용 서비스 이용 관광객은 2005년 12.8%에서 2008년 6.3%로 감소했다. 뷰티산업의 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끌 수 있는 인프라나 지원체계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뷰티산업을 부동산，자동차，관광，통신 등과 함께 5대 신흥사업으로 분류해 적극 육성하고 있다.

특별취재팀
조일훈 차장 jih@hankyung.com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