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인들 가슴 아픈 사연 없이 순탄했을까마는,지난해는 태풍이 비껴간 것 말고는 유난히 후폭풍 드센 사건사고들이 많았던 것 같다. 1960년대 국민소득 100달러에서 40여년 만에 무려 200배인 2만달러 시대를 만든 건 세계사에 유례가 없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의 행복지수는 후퇴하고 각 분야의 갈등구조는 나날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행복지수가 낮아지는 것은 나보다 우월해 보이는 것에 대한 질투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비키쿤켈은 그의 저서 <<본능의 경제학>>에서 "인간의 뇌 속에 안전을 관장하는'파충류의 뇌'는 완벽하게 아름다운 사람을 마주하면 무의식 중에 불신경보를 발령한다"고 했다. 그래서 고위직으로 갈수록 평범하거나 덜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사람이 많으며 미운 오리새끼에 대한 관대함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갈파했다.

지난 한 해를 뒤돌아보면 대한민국은'성난사회'가 아니었나 싶게 각양각색의 사건들이 많았다. 열거하기조차 가슴 시린 용산참사에서부터 자녀 둔 부모들의 마음을 짓이긴 조두순 사건에 이르기까지 분노하지 않고는 이 땅에서 살기 어려울 만큼 다사다난했다.

우리사회는 어째서 남 잘되는 꼴을 못견뎌하게 되었을까. 어째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된 말이 아직도 통용돼야 하는가. 우리가 소통하지 못하는 가장 큰 장벽이 바로 그'배 아픔' 때문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오해였으면 참 좋겠다.

또 하나 우리사회를 가장 빠르게 이해하고 누구나 공감하게 하는 상징적인 낱말은'갈등'이다. 이념갈등,지역갈등,계층갈등,노사갈등,세대갈등 따위를 굳이 나열하지 않더라도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딜레마를 부정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빌리면,갈등이 해결되어 해피엔딩이 되면 희극이고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파국으로 치달으면 비극이다. 서사구조 방식이든 변증법적 방식이든 선과 악,미와 추로 대립되는 갈등은 영화,연극,드라마는 물론이요 인생이나 사회현상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된다.

갈등구조를 살펴보면 상대가 나보다 많이 갖거나 내 것을 빼앗겼다고 느끼면서 분출한다. 지배자와 피지배자,가진 자와 못가진 자,유리한 자와 불리한 자,빼앗은 자와 빼앗긴 자의 상반된 의식이 우리사회를 양분했는지도 모른다.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질투와 갈등을 면밀히 살펴보면 열등감의 표출임을 알 수 있다. 열등감은 우월하고 싶은데 스스로 모자란다고 느끼거나,알아주기를 바라는데 무시당한다고 생각하거나,누리고 싶은데 들러리를 선다고 가슴앓이를 하거나 지금보다 더 많이 갖고 싶은 욕망에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을 '바보'라고 하신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대로 참 아름다운 바보가 많은 세상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사람냄새가 나는 순박함과 사랑과 용서와 베풂과 배려하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인생이 행복하게 마무리되는 희극이기를 원하는가,아니면 파국으로 치닫는 비극이기를 바라는가라고 물으면 누군들 비극이기를 원하겠는가. 그런데 어째서 우리들은 비극의 주춧돌인 질투와 갈등을 버리지 못하는가. 내 생명이 존귀하면 남의 안전함도 지켜주고 내 재산이 소중하면 남이 잘 사는 것도 인정해 주며,나의 출세 못지않게 남의 명예도 축복해주고 내 행복과 함께 남의 즐거움에도 박수치는데 인색해선 안된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함께 살아야 할 사람들이고 우리 후손들이 본받아야 할 사람들이기에 새해에는 성난 사회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서로 웃는 세상에 살기를 소망한다.

김홍신 < 소설가·건국대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