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50억원을 주고 받은 사람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이 법 적용을 잘못해 법원이 범죄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의 사건은 농협이 세종증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50억원의 로비자금을 주고 받은 혐의로 기소된 정대근 전 농협회장과 김형진 세종캐피탈 회장 등에 대한 항소심에서 불거졌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김창석)는 8일 정 전 회장의 공범으로 기소된 남경우 전 농협사료 대표에 대해 "남 전 대표는 50억원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공무원이 아닌 만큼 뇌물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풀어줬다. 농협사료 대표는 농협의 자회사이긴 하지만 소속 직원이 공무원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판결이다.

법원은 이례적으로 검찰이 뇌물죄를 공소장에서 잘못 적용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사건 선고 이전에 검찰에 공소장 변경(공무원이 아닌 제3자가 금품을 주고받을 때 적용하는 제3자 뇌물죄를 검토)하라고 했지만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50억원을 준 김형진 세종캐피탈 회장은 자동으로 무죄선고를 받았다. 1심에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항소를 포기한 홍기옥 세종캐피탈 사장도 항소했다면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검찰은 이에 대해 "법리 검토를 했으나 정 전 회장이 무죄라면 남 전 대표와 김 회장도 제3자 뇌물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법원의 시각과 180도 달리 판단한 셈이다. 검찰은 "알선수재로 변경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봤으나 이 경우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혐의를 검찰이 무죄를 인정하는 것이 돼 공소장을 변경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고법 형사4부는 정 · 관계에 금품을 건넨 혐의로 기소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 대해 징역 3년6월에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2년6월에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정 전 농협회장에 대해서는 50억원을 받은 점을 인정할 수 없다며 이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1심보다 낮은 징역 5년에 추징금 51억6000만원으로 감형했다.

서울고법 형사6부는 박관용 전 국회의장의 징역형을 벌금 150만원과 추징금 951만원으로 감형했다. 박 전 의장은 박 전 회장으로부터 2억원과 미화 1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과 추징금 2억951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박 전 회장으로부터 상품권 1억원어치를 받은 혐의로 기소된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징역 3년6월에 추징금 9400만원인 1심을 유지했다. 2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이택순 전 경찰청장도 1심과 같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추징금 2433만원이 선고됐다. 김종로 검사도 1심처럼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추징금 1245만원을 선고받았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