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부르즈 칼리파(Burj Khalifa)가 5년간의 대역사(大役事)를 마치고 지난 4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문을 열었다. 우리나라 여의도 63빌딩을 세 번 쌓아올린 것보다 더 높은 이 빌딩은 높이(828m)만큼이나 다양한 '최초 · 최대 · 최장'의 시공 기록들을 쏟아냈다. 단일 공사현장으로서 하루 최대 투입인원(1만2000명),세계 최초 인공위성 측량,전망대용 엘리베이터 초속 10m로 최고….

이런 기록들은 한국 건설인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주간사를 맡아 다국적 기능공들을 진두지휘했으며 첨탑,전망대 인테리어,LED조명 등 핵심시설들은 한국 중견기업들이 직접 맡아 처리했다.

공사가 진행된 5년 내내 부르즈 칼리파 현장소장을 맡아 40개국 출신의 기술진 및 기능공을 지휘한 김경준 삼성물산 건설부문 상무(56)를 지난 8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말레이시아 KLCC타워(88층),필리핀 최고 건물인 피비콤(PBcom)타워(55층) 등의 현장소장까지 지내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초고층빌딩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는 김 상무는 "부르즈 칼리파의 완공은 한국을 초고층빌딩 시공 분야에서도 세계 최강임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중동과 동남아 지역에서 또다른 초고층빌딩 사업을 찾아나서고 있다.

▼162층,828m 빌딩을 5년 만에 완공했는데 다른 건물들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의 빠르기인가요.

"부르즈 칼리파는 3일에 한 개층을 올리는 '층당 3일 공법'이 적용됐습니다. 지금까지 지어진 초고층 빌딩 시공속도로는 가장 빠른 것입니다. 이는 1990년대 중반에 지어진 88층 높이의 말레이시아 최고층 빌딩 KLCC 공사 때(층당 4.5일)와 비교하면 50%나 빠른 것입니다. "

▼초고속 공사 비결은 무엇인가요.

"시간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기능공들이 주간과 야간조로 나뉘어져 작업을 하고 여름에는 해가 진 다음에 콘크리트 타설을 해야 되는 등 변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작업단위시간을 10시간으로 정해 하루 평균 1.5m씩 높이를 올려갔습니다.

콘크리트 타설을 위한 거푸집 자동상승시스템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기존 수동식 거푸집을 이용할 경우 한 층을 올리는 데 1주일 이상 걸리는데 새 시스템을 통해 공기를 크게 줄일 수 있었습니다. 고층 콘크리트 타설 부문에서는 세계 신기록도 나왔습니다. 156층 마지막 콘크리트를 타설할 때 콘크리트 수직압송기술을 이용해 콘크리트를 한 번에 601m나 쏘아 올렸습니다. "

▼부르즈 칼리파에 적용된 신공법들은 또 어떤 게 있나요.

"측량의 오차를 최소화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사용했습니다. 3대의 인공위성을 이용해 건물의 측량 오차범위를 5㎜ 이내로 줄였습니다. 대형 공사현장에서는 또 많은 인력과 자재,장비를 빌딩 최상부까지 원활하게 이동시키고 필요한 곳에 일사불란하게 배치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를 위해 로지스틱팀을 별로도 꾸려 전체 물동량을 관리했습니다. "

▼건물명이 '부르즈 칼리파'와 '버즈 칼리파'로 혼용되고 있는데 두바이 현지에서는 어떻게 부르나요.

"부르즈(Burj)는 아랍어로 탑이라는 뜻입니다. 이를 영어식으로 표현한 것이 '버즈'인데 두바이에서는 부르즈 칼리파와 버즈 칼리파를 둘 다 쓰고 있습니다. "

▼공사 현장에 투입된 인력의 출신 국가가 매우 다양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부르즈 칼리파 현장의 기술진과 기능공들의 국적을 조사해 보니 총 40개국이나 됐습니다. 하루에 최대 1만2000여명이 현장에 투입됐죠.한마디로 다국적군입니다. 매니저급만 25명이었는데 안전관리 구조 호텔 설계 계약 등 부문별로 한국 미국 영국 인도 이라크 프랑스 벨기에 등의 출신 기술진이 참여했습니다. 일반 현장인력 중에서는 인도인이 70% 정도로 가장 많았습니다.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중국 등도 적지 않았고요. 삼성물산에서는 전문기술인력 중심으로 34명이 파견돼 현장 전체를 관리했습니다. "

▼기능공들의 문화 차이나 의사소통 등의 문제점으로 인해 현장관리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원활한 의사소통과 공사 목표 공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위해 공사가 진행된 5년 동안 매일 아침 7시에 25명의 매니저들과 차를 마시며 미팅을 가졌습니다. 그날 할 일,발주처와 해결할 사항,팀별 협조내용 등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매일 일과를 정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의 팀(one team)'이라는 점을 자주 강조했습니다.

30여명의 한국 직원들끼리는 매일 오전 6시 매니저 미팅에 앞서 모임을 갖고 현장을 돌면서 그날 할 일을 별도로 체크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매일 매일의 계획을 기반으로 작전에 나섰습니다.

직원들 간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문제를 없애고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사업 초기에는 매주 목요일을 호프데이로 정해 팀장 중심으로 파티를 갖도록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국인들이 연장자에게 소주를 받을 때 두 손을 사용하는 등의 기초적인 한국 문화도 알려주었습니다. "

▼중동 공사현장에서는 기능공들의 종교 문제도 신경써야 한다면서요.

"무슬림 기능공은 라마단 기간 중 오전 7시에서 오후 1시까지만 일을 합니다. 평소 때도 매일 4회의 기도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공사현장에 별도의 기도공간도 제공했습니다. "

▼사막이라 더운 날씨 때문에 힘들었다고 들었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7~8월 여름엔 공사현장 기온이 최고 55도(섭씨)까지 올라갑니다. 이 때는 오후 12시부터 3시까지는 옥외 작업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기간엔 매일 기능공 10여명씩이 현장에서 탈수증세로 쓰러졌습니다. 한국에서 나온 기술요원들 중에는 여름에 몸무게가 10㎏까지 빠진 사람도 있습니다. 현장에 의무실을 갖춰두고 탈수증세 기능공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한 것은 물론이고 앰뷸런스도 항상 대기시켜 놓고 있었습니다. "

▼사막에 800m가 넘는 건물을 세운다는 게 일견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이곳 아라비아반도는 융기 지역입니다. 사막 아래로 6m만 내려가면 단단한 석회암 지반이 나옵니다. 여기에 총 3192개의 대형 콘크리트 말뚝을 지하 50m까지 박았습니다. 건물 바로 아래로 192개,나머지 3000개는 건물 주변 지하에 박았습니다. 이 말뚝 하나 무게는 3000t에 달합니다. "

▼부르즈 칼리파 빌딩의 전체 규모를 쉽게 말씀해 주세요.

"높이는 지난 4일 828m로 공식 발표됐습니다. 이는 종전 최고 빌딩인 대만의 '타이베이101'(508m)보다 무려 320m가 높은 것입니다. 국내 빌딩과 비교하면 여의도 63빌딩을 세 번 쌓아올린 뒤 70m를 더 올라간 높이입니다. 5년 동안 이 공사에 투입된 연인원도 850만여명에 이릅니다. "

▼초고층빌딩 시장에 대한 전망은.

"중동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각 나라들이 국가 및 이미지 제고를 위해 잇따라 건설을 추진 중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1100m 높이의 건물 건축을 추진 중이며 인도도 내달 초고층학회를 주최하면서 초고층빌딩 건축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중동 등에서 발주될 초고층빌딩 사업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이들 초고층빌딩 수주 활동에 나설 계획입니다. "

김철수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