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도약! 2010] 젊은이 못지않게 활동하는 난 여전히 박수받는 勞人이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6) 고령화 사회 대비하자‥새로운 시작 '실버 라이프'
▶▶ 2030년 행복한 75세
나는 오늘도 젊은 사람들 틈에 섞여 출근을 한다. 젊은 사람들은 출근길이 지옥이라고 하지만 내게는 하루 중 가장 설레는 시간이다. 75세의 고령이지만 전철 계단을 오르내리고 사람들에게 부대끼는 것 자체를 즐긴다. 오늘은 영등포구에 사는 우크라이나의 한 새댁을 만나는 날이다. 2년 전인 2028년 한국에 일하러 왔다가 한국인과 결혼한 여성이다. 나는 그녀처럼 한국에서 살게 된 외국인들을 돕는 '다문화 도우미'다. 한국을 알고 싶어하는 외국인들에게 1주일에 2~3번씩 언어와 문화를 가르쳐주고 있다.
"적은 보수라도 상관없다"
사실 나는 선생님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외로움을 덜어주고 한국 생활을 돕는 친구에 가깝다. 환갑이 넘어 이 일을 시작했지만,적응하는 게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30년 넘게 중학교 영어 선생으로 근무한 덕이었다. 한국말이 서투른 외국인들과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학교 담장 안에서만 머물다 세상 속을 누비며 일을 하게 되니 하루 하루가 새롭고 즐겁다.
내게 이런 멋진 '제2의 직업'이 생긴 건 여러 노력들이 모아진 덕분이다. 20년 전만 해도 나같은 노인을 필요로 하는 곳은 별로 없었다. 고작 택배원이나 주유소처럼 저임금의 일자리가 전부였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매년 예산을 늘려 노인을 위한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어 냈지만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10년 전부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9년부터 인구가 감소하더니 생산 인구와 노인 인구의 격차가 빠르게 좁아지면서 사회 전반에 위기 의식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마침 제조업 시대가 막을 내리고 기술과 감성 서비스 경제시대가 도래하면서 우리처럼 다방면에서 경험을 쌓은 노인들이 대우받기 시작했다. 어린이의 안전한 통학을 위해 교통 지도를 하거나 맞벌이 부부의 자녀를 돌보는 일,중병을 앓고 있는 노인을 간병하는 일 등이 기본 일자리다. 여기에 백화점과 호텔 등도 부족한 청년인력들을 대체하기 위해 노인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이제 일자리를 원하는 노인의 40% 이상이 자신의 일을 갖게 됐다.
젊은이들보다 적은 보수를 받지만 불만스럽지 않다. 나는 다문화 도우미를 하면서 한 달에 180만원 정도를 번다. 영어 선생을 하면서 받았던 월급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지속적인 수입을 얻으려는 노인들에게는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젊은이 1명을 고용하는 대신 노인 2명을 고용하는 민간기업들도 점차 늘고 있다. 공무원 연금 200만원에 월급까지 합치면 아내와 그럭저럭 생활을 꾸리고 주말에는 가끔씩 여행가는 여유도 즐길 수 있다.
"실버산업도 경제성장에 기여"
처음에는 노인들이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것 아니냐는 젊은이들의 불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불만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노인들이 일을 시작하면서 젊은이들이 떠안아야 할 부담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4년 전부터 원하는 노인들은 국민연금을 매달 받아가는 대신 꼬박꼬박 연금 보험료를 냈다. 대신 노인들은 일을 그만둘 경우 더 많은 연금을 보장받았다. 17년 뒤로 예상됐던 국민연금 고갈 시기가 조금씩 늦춰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정부가 재산은 있지만 직업이 없는 노인이 자녀 명의로 건강보험 혜택을 누리던 관행을 없애면서 건강보험의 재정건전성도 개선됐다. 정부는 노인에게 지급하는 연금 가운데 일정 부분으로 기금을 만들어 미취업 젊은이들의 고용지원금으로 활용했고,노인들은 이에 기꺼이 동의했다.
직업을 갖지 않은 노인들 상당수는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기도 한다. 20여년 전만 해도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노인은 전체의 5%에 불과했다. 일도 봉사활동도 하지 않는 대부분의 노인들은 경로당이나 공원에서 소일거리를 찾아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자원봉사활동지원센터가 전국 곳곳에 마련되면서 노인들의 손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이제는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노인들이 선진국 수준인 20~30%로 늘었다.
"더 이상 힘없는 노인이 아니다"
우리 부부만 해도 나이가 들면서 자녀에게 돈을 무조건 쏟아붓거나 저축에만 몰두하지 않게 됐다. 아내는 건강과 여가를 위해 수입의 20~30%가량을 사용한다. 아내는 집을 편리하고 안전하게 꾸미는 데 관심이 많다. 집안의 문턱을 낮추는 공사는 물론 혼자 있다가 쓰러져도 외부와 연락이 닿을 수 있도록 무인시스템도 갖췄다. 청소로봇과 안마로봇도 들여놨다. 아내와 달리 나는 문화 · 교육 상품에 관심이 많다. 뒤늦게 공부 욕심이 많아져 노인사이버대학에 등록해 공부를 하고 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1주일에 2회 정도 사교춤과 수영을 배운다.
사회 활동이 늘어난 요즘 노인들은 인터넷 문화 소비에도 적극적이다. 노인들 대부분이 2000년대 직장생활을 거치며 인터넷 활용에 익숙한 데다,화면이 크고 기능이 단순화된 노인 전용 컴퓨터가 일반화된 덕분이다. 나 역시 하루에 1~2시간씩은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낸다. 처음에는 노인들의 등장에 거부감을 느낀 젊은이들이 일자리 문제나 세금 등과 관련해 거친 말을 쏟아내며 공격해 당황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노인들도 젊은이들과 똑같은 네티즌 대접을 받고 있다. 오히려 점잖고 경험 많은 노인 네티즌은 팬카페까지 둘 정도다. 젊은이들의 치열한 논쟁을 정리하는 노인들의 촌철살인 한마디가 '어록'으로 추앙받기도 한다.
요즘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과거 노인들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다. 몇년 전 주름살과 반점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덕이기도 하지만,기본적으로 생활의 활력이 노화를 지연시키고 있다. 더 이상 힘없는 노인취급을 받고 싶지 않다. 난 여전히 일을 사랑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한 사람의 자연인일 뿐이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
나는 오늘도 젊은 사람들 틈에 섞여 출근을 한다. 젊은 사람들은 출근길이 지옥이라고 하지만 내게는 하루 중 가장 설레는 시간이다. 75세의 고령이지만 전철 계단을 오르내리고 사람들에게 부대끼는 것 자체를 즐긴다. 오늘은 영등포구에 사는 우크라이나의 한 새댁을 만나는 날이다. 2년 전인 2028년 한국에 일하러 왔다가 한국인과 결혼한 여성이다. 나는 그녀처럼 한국에서 살게 된 외국인들을 돕는 '다문화 도우미'다. 한국을 알고 싶어하는 외국인들에게 1주일에 2~3번씩 언어와 문화를 가르쳐주고 있다.
"적은 보수라도 상관없다"
사실 나는 선생님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외로움을 덜어주고 한국 생활을 돕는 친구에 가깝다. 환갑이 넘어 이 일을 시작했지만,적응하는 게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30년 넘게 중학교 영어 선생으로 근무한 덕이었다. 한국말이 서투른 외국인들과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학교 담장 안에서만 머물다 세상 속을 누비며 일을 하게 되니 하루 하루가 새롭고 즐겁다.
내게 이런 멋진 '제2의 직업'이 생긴 건 여러 노력들이 모아진 덕분이다. 20년 전만 해도 나같은 노인을 필요로 하는 곳은 별로 없었다. 고작 택배원이나 주유소처럼 저임금의 일자리가 전부였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매년 예산을 늘려 노인을 위한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어 냈지만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10년 전부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9년부터 인구가 감소하더니 생산 인구와 노인 인구의 격차가 빠르게 좁아지면서 사회 전반에 위기 의식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마침 제조업 시대가 막을 내리고 기술과 감성 서비스 경제시대가 도래하면서 우리처럼 다방면에서 경험을 쌓은 노인들이 대우받기 시작했다. 어린이의 안전한 통학을 위해 교통 지도를 하거나 맞벌이 부부의 자녀를 돌보는 일,중병을 앓고 있는 노인을 간병하는 일 등이 기본 일자리다. 여기에 백화점과 호텔 등도 부족한 청년인력들을 대체하기 위해 노인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이제 일자리를 원하는 노인의 40% 이상이 자신의 일을 갖게 됐다.
젊은이들보다 적은 보수를 받지만 불만스럽지 않다. 나는 다문화 도우미를 하면서 한 달에 180만원 정도를 번다. 영어 선생을 하면서 받았던 월급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지속적인 수입을 얻으려는 노인들에게는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젊은이 1명을 고용하는 대신 노인 2명을 고용하는 민간기업들도 점차 늘고 있다. 공무원 연금 200만원에 월급까지 합치면 아내와 그럭저럭 생활을 꾸리고 주말에는 가끔씩 여행가는 여유도 즐길 수 있다.
"실버산업도 경제성장에 기여"
처음에는 노인들이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것 아니냐는 젊은이들의 불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불만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노인들이 일을 시작하면서 젊은이들이 떠안아야 할 부담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4년 전부터 원하는 노인들은 국민연금을 매달 받아가는 대신 꼬박꼬박 연금 보험료를 냈다. 대신 노인들은 일을 그만둘 경우 더 많은 연금을 보장받았다. 17년 뒤로 예상됐던 국민연금 고갈 시기가 조금씩 늦춰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정부가 재산은 있지만 직업이 없는 노인이 자녀 명의로 건강보험 혜택을 누리던 관행을 없애면서 건강보험의 재정건전성도 개선됐다. 정부는 노인에게 지급하는 연금 가운데 일정 부분으로 기금을 만들어 미취업 젊은이들의 고용지원금으로 활용했고,노인들은 이에 기꺼이 동의했다.
직업을 갖지 않은 노인들 상당수는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기도 한다. 20여년 전만 해도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노인은 전체의 5%에 불과했다. 일도 봉사활동도 하지 않는 대부분의 노인들은 경로당이나 공원에서 소일거리를 찾아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자원봉사활동지원센터가 전국 곳곳에 마련되면서 노인들의 손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이제는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노인들이 선진국 수준인 20~30%로 늘었다.
"더 이상 힘없는 노인이 아니다"
우리 부부만 해도 나이가 들면서 자녀에게 돈을 무조건 쏟아붓거나 저축에만 몰두하지 않게 됐다. 아내는 건강과 여가를 위해 수입의 20~30%가량을 사용한다. 아내는 집을 편리하고 안전하게 꾸미는 데 관심이 많다. 집안의 문턱을 낮추는 공사는 물론 혼자 있다가 쓰러져도 외부와 연락이 닿을 수 있도록 무인시스템도 갖췄다. 청소로봇과 안마로봇도 들여놨다. 아내와 달리 나는 문화 · 교육 상품에 관심이 많다. 뒤늦게 공부 욕심이 많아져 노인사이버대학에 등록해 공부를 하고 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1주일에 2회 정도 사교춤과 수영을 배운다.
사회 활동이 늘어난 요즘 노인들은 인터넷 문화 소비에도 적극적이다. 노인들 대부분이 2000년대 직장생활을 거치며 인터넷 활용에 익숙한 데다,화면이 크고 기능이 단순화된 노인 전용 컴퓨터가 일반화된 덕분이다. 나 역시 하루에 1~2시간씩은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낸다. 처음에는 노인들의 등장에 거부감을 느낀 젊은이들이 일자리 문제나 세금 등과 관련해 거친 말을 쏟아내며 공격해 당황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노인들도 젊은이들과 똑같은 네티즌 대접을 받고 있다. 오히려 점잖고 경험 많은 노인 네티즌은 팬카페까지 둘 정도다. 젊은이들의 치열한 논쟁을 정리하는 노인들의 촌철살인 한마디가 '어록'으로 추앙받기도 한다.
요즘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과거 노인들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다. 몇년 전 주름살과 반점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덕이기도 하지만,기본적으로 생활의 활력이 노화를 지연시키고 있다. 더 이상 힘없는 노인취급을 받고 싶지 않다. 난 여전히 일을 사랑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한 사람의 자연인일 뿐이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