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장르 파괴…'역사鑛脈' 캐내면 아이디어 넘쳐요"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2010 문학 오디세이(1) 역사학자 이덕일·대하작가 김정산
문화예술도 '융·복합 시대'
"가극 열풍 반갑지만 사실 왜곡 걱정…식민사관 파니는 현실 안타까워"
문화예술도 '융·복합 시대'
"가극 열풍 반갑지만 사실 왜곡 걱정…식민사관 파니는 현실 안타까워"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 함민복씨의 시처럼 모든 상상력의 꽃도 경계의 접점에서 피어난다. 경계를 넘나들며 영역을 초월하는 통섭과 융합의 시대.올해는 새로운 세기의 첫 10년을 넘는 문화사적 변곡점이다. 역사와 문학,영화와 드라마,활자매체와 시각예술,종교 간 장벽 허물기 등 문화예술 분야의 새로운 화두를 점검해본다.
첫 순서로 역사와 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49)과 대하소설 《삼한지》의 작가 김정산씨(49)를 초대했다. 이들은 "역사야말로 무궁무진한 콘텐츠의 보고"라며 "미래의 아이디어를 캐려면 과거의 광맥부터 잘 살펴보라"고 말했다. 또 "최근의 사극 열풍은 반가운 현상이지만 말초적인 흥미만 좇고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특히 '식민사관과 일본말법이 판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이 글자그대로 '정음(正音)'이잖아요. 한글은 한자와 달리 소리글자인 표음문자입니다. 두음법칙 같은 강제규정은 애초에 없었죠.그런데 일제가 '아래아(ㆍ)' 같은 표기를 없애버리고 마음대로 바꿨죠.우린 그걸 아무 생각없이 쓰고…."(이덕일)
"국어사전 속의 예문도 대개 일본어투예요. 심지어 '친일인명사전'을 펴낸 단체의 책임자가 TV 토론회에서 던진 첫마디부터 그랬으니까요. 나라 말과 글을 이렇게 대접해서야 우리 정신이 제대로 살아나겠어요?"(김정산)
두 사람은 역사와 문학을 엮는 씨 · 날줄인 '말'과 '글'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씨는 "올해가 경술국치 100주년인데 그동안의 물질적 성취 위에서 이젠 정신적 가치를 제대로 조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각을 깨야 합니다. 역사학은 과거학이 아니라 미래학이지요. 일제 시대에 조선사편수회에서 왜곡된 역사를 만든 이후 식민사관이 아직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
이들은 역사학계의 과제와 함께 대중매체의 수용 방식도 꼬집었다. 김씨는 "얼마 전에 끝난 '선덕여왕'을 보면서 아쉬운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며 "흥미에만 초점을 맞춰 역사 왜곡을 밥먹듯하면 훗날 문화계에 독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적 사실에 토대를 둔 상상력은 감동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1차 사료조차 참고하지 않고 가상의 얘기만으로 끌고가면 사극이 아니라 창작극이라는 것."역사적 지식을 갖춘 사람들까지도 좋아할 사극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과거의 역사 속에서 현재의 지혜를 발견하고 미래의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사람도 늘어날 수 있죠."
이어 김씨는 삼국 통일기를 다룬 역사소설 《삼한지》(전10권)의 김유신 얘기를 들려줬다. "김유신이 반란군과 대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유성이 김유신 진영으로 떨어지자 반란군이 환호합니다. 이때 김유신은 커다란 연에 불을 붙여 하늘로 날리죠.그러자 떨어졌던 별이 다시 솟는다며 반란군이 동요합니다. 그는 창칼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서 위기를 극복한 리더였죠.이 같은 역사 속의 지혜를 기업 경영자나 국가 경영자들이 체득하길 바랍니다. "
이에 대해 이씨는 "우리 역사의 특징은 '대륙성'과 '해양성'을 겸비한 데다 '농경성'까지 갖췄다는 것"이라면서 "기마 · 유목민족보다 정주문화권의 장점까지 녹여내 문명성이 뛰어난 데 일본의 식민사관이나 중국의 동북공정 등은 우리 특징 중 대륙성과 해양성을 배제시키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 중요한 건 우리의 대륙성과 해양성이 호전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우린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을 건국 이념으로 삼았죠.고조선 건국 과정도 원래 주민들과 충돌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는 것이었고요. "
"삼국 통일기에 당나라가 고구려와 백제 유민을 거두지 말라고 했으나 문무대왕은 이를 거부하고 그들과 전쟁을 벌이면서까지 유민들을 거두었죠.말갈족까지 포용했잖아요. "(김)
"예.나당전쟁 때문에 신라의 삼국통일은 더 큰 의미를 지닙니다. 문무왕의 수중릉도 죽어서까지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거잖아요. "(이) "덩샤오핑도 그처럼 죽을 때 뼈를 바다에 뿌려달라고 했다더군요. "(김)
"'태종우(太宗雨 · 태종의 기일인 5월10일에 내리는 비)'도 마찬가집니다. 조선 태종이 죽기 전에 가뭄을 걱정하며 '내 하늘에 빌어 비가 오게 하리라' 했는 데 죽자마자 비가 내렸고 이후에도 기일마다 비가 내렸다 해서 붙은 이름이죠.수중릉과 태종우의 정신을 갖고 국가와 기업을 경영하면 반드시 좋아질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의 대화는 역사 속의 리더십을 넘어 '이노베이터(혁신가)들은 대부분 비주류에서 나왔다'는 얘기로 이어졌다. "지금은 주류사회의 카르텔이 너무 견고합니다. 10대 때의 수능 성적으로 일생이 좌우되는 시스템은 잘못됐습니다. 이노베이터를 수용할 줄 모르는 사회에는 발전이 없어요. 역사 관련 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하려 해도 장벽이 너무 높더군요. 이러니 어떻게 이노베이터들이 나올 수 있나요?"(이) "그럼요. 혁신과 창의,통섭과 융합의 인문학적 가치가 갈수록 중요해지는데…."(김)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