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투표와 전자어음인 '단기사채'를 시작으로 전자증권 시대가 열릴 겁니다. 소액주주들이 보유 주식만큼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자본시장의 민주화'가 시작되는 거죠."

이수화 한국예탁결제원 사장(사진·56)은 11일 한국경제신문의 온라인미디어 <한경닷컴>과 만나 "전임 사장들이 뿌려놨던 씨앗들이 이제 하나둘씩 결실을 맺고 있다"며 "단기사채제도 도입, 차세대 시스템과 전자투표 시스템 구축, 외국인 국채거래 활성화 등 역점 사업들을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마무리하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 단기사채로 '전자증권' 시대 개막

이 사장이 민간기업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예탁결제원에 부임한 지도 1년5개월이 지났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 동안 이 사장이 이뤄낸 성과는 크다.

지난해 예탁결제원은 전사포털을 오픈하는 등 차세대 시스템 구축 작업에 한발을 디뎠고, 한국거래소 등과 함께 증권유관기관 수수료 체계도 개편·인하했다. '휴면주식' 찾아주기 캠페인을 통해 35년 동안 쌓인 휴면주식 60% 이상(시가기준)의 주인을 찾아주기도 했다.

올해에는 단기사채 도입과 관련해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2011년 9월 단기사채 시스템 오픈이 목표다.

단기사채란 현행 기업어음(CP)을 대신하는 전자어음으로, 사채의 발행과 유통, 행사 등을 모두 실물이 아니라 전자적으로 처리하는 제도다.

이 사장은 "예전의 실물 CP라고 하는 것은 기업 대표가 필요한 만큼 마음대로 발행하면 되는 것이었다"면서 "하지만 단기사채제도가 도입되면 발행한도를 이사회에서 결정하게 되므로 한도 내에서 필요한 만큼 필요한 시기에 발행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발행한도와 발행잔액이 전산상에 일목요연하게 나타남으로써 개인 투자자들이 기업의 재무상태에 대해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또 "대우채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이 터질 경우 예전에는 기업 CP가 얼마나 발행됐는지 한번에 파악하기 힘들었다"며 "하지만 전자CP가 발행되면 전산상에 표시가 되므로 이런 문제점을 없애고 통화정책 수립이 적기에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 동안 기업들이 실물로 어음을 발행함으로써 나타났던 분실, 위·변조 등의 위험도 없앨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단기사채 도입은 전자증권 시대의 서막에 불과하다.

예탁결제원은 기업어음에서 시작해 국공채, 회사채에 이어 주식까지 모두 실물에서 전자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계획중이다.

이 사장은 "일본은 2003년 단기사채를 시작으로 지난해 주식까지 전자증권화를 완료했다"며 "국내도 단기사채 도입 이후 5년안이면 주식까지 전자증권화가 완료될 것"으로 예상했다.

전자증권 도입이 금융실명제를 넘어 자본시장 전체의 실명제를 이뤄내는 길이 될 것이라는 것이 그의 기대다.

올해 8월에는 전자투표 서비스도 개시할 예정이다. 전자투표란 주주가 주주총회에 직접 참석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제도.

이 사장은 "소액주주들이 인터넷에 모여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며 "주총장에 참석하지 못해 권리를 찾지 못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 유관기관 펀드 '긍정적'

예탁결제원은 2008년 말 국내 증시가 폭락했을 때 증시 부양 목적으로 설립된 5000억원 규모의 증권유관기관 공동펀드에 2100억원을 투자했다. 전체 펀드 규모의 40.7%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다.

"2008년 8월 사장 부임 이후 리먼 사태가 터졌고 10월 코스피 지수가 900선까지 떨어졌습니다. 당시 예탁결제원은 자금을 전부 은행 정기예금, MMF 등에 넣어두고 있었는데 직원들에게 주식에 투자할 500억~1000억원 정도를 준비하라고 지시했었죠."

그러던 중 증권유관기관 차원에서 증시를 부양할 만한 대책 마련이 논의됐고, 예탁결제원이 주도적으로 펀드에 참여하게 된 것.

최근 예탁결제원은 이사회에서 전체 이익잉여금 중 주식에 투자한 비중이 높다는 문제가 제기돼 40% 정도를 회수해 일부 이익을 확정지은 상태다.

하지만 이 사장은 "아직 증시에 1260억원이 들어 있는데, 올해 안에는 환매하지 않고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도 주식시장에 위기가 있을 때에는 증권유관기관들이 펀드를 조성해 증시를 부양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5000억원은 전체 증시에서 큰 돈이 아닐 수도 있지만 투자심리를 안정시키는 효과는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이 사장은 영남대 경영학과와 연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을 지냈다. 이후 한미은행 부행장과 한국씨티은행 부행장을 거쳐 2008년 8월 한국예탁결제원 사장으로 부임했다.

글=김다운 한경닷컴 기자 kdw@
사진=양지웅 한경닷컴 기자 yangd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