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는 원래 멕시코만의 유전 개발권을 너무 높은 가격에 확보한 기업들에 붙여진 말이었다. 이후 경제학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게리 베커 시카고대 교수는 각국 노동시장을 비교 분석하면서 이 용어를 썼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과 제도가 발전할수록 오히려 실업자가 늘어나는 현상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2005년 5월 금융감독위원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은행권의 과당 경쟁을 지적하면서 '승자의 재앙'을 경고한 바 있다.

최근 들어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이 단어가 많이 쓰인다. 의료보험 개혁법안이 하원에 이어 작년 말 상원을 통과하자 오바마 대통령이 정책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보수적인 중산층 백인들은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고들 얘기한다. 이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 이후 의보개혁에 온갖 열정을 쏟아붓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과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 간 골이 얼마나 큰지를 확인했다는 반응이다.

실제 대다수 미국인들의 관심은 일자리와 국가안전에 쏠려 있다. 헌데 대통령은 의보개혁과 그린에너지 등을 최우선 의제로 삼아왔다. 그러던 차에 지난해 11월 텍사스 포트후드 기지 대량 살상 사건이 터졌고 곧이어 크리스마스 이브엔 알 카에다의 노스웨스트 항공기 테러 기도가 있었다. 게다가 아프카니스탄의 미 중앙정보국(CIA) 기지에서 이중간첩 혐의자의 자폭 테러 사태까지 발생했다. 안전뿐 아니라 고용시장도 다시 악화돼 작년 12월 실업자가 8만5000명가량 늘었다.

미 보수층은 미국이 위기에 빠졌다고 생각한다. 책임은 온전히 오바마 대통령 몫으로 돌린다. 그렇지 않아도 오바마 정부의 각종 정책이 달갑지 않았던 터였다. 관타나모 수용소 폐지 계획,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 국유화,대마불사 차원의 금융사 구제금융,탄소세 도입 등이 모두 그렇다. 이제는 세금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며 한숨을 쉬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선거 유세 중 95%에 달하는 미국인의 세금이 줄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통령을 사회주의자로 규정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정책이 나올 때마다 무조건 부의 재분배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해석하려는 경향마저 생겨났다. 중산층이 등을 돌리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이 50% 정도에 머물고 있다. 민주당원조차 이탈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최근 갤럽 조사 결과 스스로 민주당원이라고 인정한 미국인이 49%로 줄었다. 2008년 조사에서 이 비중은 51.5%였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판세가 불리한 지역구의 민주당 중진 의원들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정치는 표(인기)를 먹고 사는 것이다. 인기를 잃으면 위기때 쓸 동력까지 상실하게 된다.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재집권은 없다. 오바마 정부가 바로 그런 고민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칼럼니스트인 페기 누난은 집권 2년차인 오바마 정부가 '재앙적 승리의 위기'에 빠졌다고 경고한다. 보수층이 결집할 움직임이고 민주당 지도부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뉴욕=이익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