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중략)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 '(<어떤 결심> 중)

지난해부터 암 투병을 하고 있는 이해인 수녀(65)가 병상의 고통 속에서 건져올린 깨달음을 담아낸 신작 시집 《희망은 깨어 있네》(마음산책)를 발표했다.

책머리에서 이 수녀는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덮친 암이라는 파도를 타고 다녀온 '고통의 학교'에서 나는 새롭게 수련을 받고 나온 학생"이라고 표현했다. 아픈 중에도 "오히려 다른 환자분들을 위한 기도를 더 많이 하려고 애썼다"는 그의 상냥한 마음결이 시집 곳곳에서 묻어난다.

물 한 모금 넘기기 힘들었을 때 "물도 음식이라 생각하고 아주 천천히 맛있게 씹어서 드세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얻은 통찰은 <새로운 맛>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 후로 나는/ 바람도 햇빛도 공기도/ 음식이라 여기고/ 천천히 씹어먹는 연습을 한다// 고맙다고 고맙다고/ 기도하면서-// 때로는 삼키기 어려운 삶의 맛도/ 씹을수록 새로운 것임을/ 다시 알았다. '

병마가 안겨준 고통은 그에게 원망이 아닌 희망이 되기도 했다. '몸의 아픔은 나를/ 겸손으로 초대하고/ 맘의 아픔은 나를/ 고독으로 초대하였지// 아픔과 슬픔을/ 내치지 않고/ 정겹게 길들일수록/ 나의 행복도/ 조금씩 웃음소리를 냈지.'(<눈물의 만남> 중)

<위로자의 기도>에서는 '저의 아픔에 대한 두려움을/ 아직은 극복을 못했지만/ 아픈 사람을 조금만 덜 아프게/ 슬픈 사람을 조금만 덜 슬프게/ 도와줄 수 있는/ 어떤 힘을 제게 주세요'라며 주위를 살뜰하게 감싸안는 것도 잊지 않는다.

수필가 장영희,김수환 추기경,화가 김점선 등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그리워하는 시도 수록됐다. 책 말미에 실린 이 수녀의 단상들도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수녀는 "암 선고를 받은 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기쁘고 명랑하게 동반해야 겠다고 생각하니 의학적 판정보다 결과가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고통이라는 수업료를 지불하며 많은 깨달음을 얻었으니 오히려 병이 은총이고 선물"이라며 "큰 고통을 겪으면서 오히려 세상이 정다워지고 사람이 사랑스러워지는 경험을 하는 등 철이 든 것 같다"고 전했다. 이 수녀는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학교의 수련생이라고 여기면서,아픔은 나만 겪는 게 아니고 언젠가 지나갈 것이라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