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내놓았지만 정치권에서의 법 개정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야당의 '원안대로 추진'과 여당의 '자족기능 충족' 주장이 맞서며 기싸움을 첨예하게 벌이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은 세종시 문제를 놓고 김영봉 중앙대 명예교수,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신도철 숙대 경영학부 교수,이기우 인하대 법대 교수,황성돈 외대 정치행정언론대학원 교수,조영기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정성옥 국가발전연구포럼 사무총장 등과 긴급좌담회를 갖고 학계의 입장을 들었다. 좌담회는 서울 중구 필동 한반도선진화재단에서 이용환 선진화재단 사무총장 사회로 두 시간가량 진행됐다.


△사회자=많은 논란이 됐던 세종시 수정안이 오늘 발표가 됐다. 학자 입장에서 각자 어떻게 지켜보았는지 궁금하다.

△류동길 교수 = 세종시 문제의 뿌리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가 충청표를 의식해서 수도를 옮긴다는 구상으로부터 시작했다. 그게 위헌 판결을 받자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법치의 승리라고 환호했다. 2004년 10월이다. 그 다음날 박근혜 당시 대표가 한나라당이 수도이전법에 찬성한 것에 대해 공식 사과까지 했다. 하지만 이후 한나라당이 격론 끝에 당론을 (수도 이전)찬성으로 정한 것은 잘못된 결정이었다. 현 정부 들어와 뒤늦게라도 원안을 백지화한 것은 옳다고 본다. 그러나 잘못된 대못을 빼버리는 것으로 끝났으면 좋은데,수정안 내용을 보면 엄청난 '충청권 특혜'다. 다른 지역에서 역차별 이야기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

△김영봉 교수 = 정부가 약속을 늘려가고 있다. 대학 정원도 늘리고,기업 유치하고,땅도 싸게 공급하는 식이다. 기업 유치에는 성공적이지만 정부가 갈수록 후해지는 약속을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이 된다. 충청에서 안 받아들이고 야당이 계속 성토하면 정부가 원안에 '플러스 알파'를 자꾸 덧붙인다. 이런 악순환은 충청권 여론이 돌아서고 정상적인 국회 절차 통해 해결되지 않으면 끝낼 수 없다.

△ 정성옥 사무총장 = 2002년 10월 수도이전법 제정 후 10년간 이 문제로 온 국민의 국론이 분열됐다는 것이 애석한 부분이다. 지금까지 수도 이전의 정당성을 놓고 논리적으로 논쟁해 왔는데 이제는 세종시 구상에 대한 내용과 해결책을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 이기우 교수 = 행정수도 이전은 충청표를 의식했다는 점에서 정책적 타당성을 부여할 수 없는 방안이었다. 이번 발표된 변칙 수정안 역시 지역 포퓰리즘이라는 점에서 뿌리가 본질적으로 같다. 지역주의라는 연장선상에서 계속 정책 구상한다는 점에서 우려할 수밖에 없다. 또한 세종시를 어떻게 하느냐는 충청도민의 문제다. 그런데 중앙정부에서 '이렇게 해주겠다'고 하는 것 역시 포퓰리즘이다. 이렇게 지역의 문제를 중앙정부가 해결하다 보니 끊임없이 문제가 생겨난다. 근원적인 해결책 없이 계속 뭔가를 덮으려는 모양새다. 포퓰리즘의 확대 재생산이 생겨나는 꼴이다. 정책적 합리성도 추구하면서 신뢰성도 얻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이만큼 손해봤으니까 이만큼 특혜 베풀겠다'가 아니라 국가 발전 위해 어떻게 갈 것인지,그 과정에서 손해를 입었다면 어떻게 보상할지 방안을 찾아야 한다.

△ 조영기 교수 = 통일이 됐을 때 과연 통일 수도를 어디에 둬야 할 것인가의 문제다. 세계 정치 · 경제의 중심축이 미국에서 동북아로 옮겨가고 있다. 수도 이전 문제는 장기적 비전 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져 왔다. 국민들이 이 사이에서 포퓰리즘적인 반사이익을 받도록 만들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을 여기 갖고 나왔다. 고려 장수왕이 수도를 압록강 건너인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겨온 것이나,신라가 통일후 대동강 이북 만주땅을 포기하고 수도를 경주에서 한발짝도 북진시키지 않은 것 등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 황성돈 교수= '세종시'라고 하는데 북진정책 썼던 세종대왕이 알면 난감해할 거다(일동 웃음).70년대 독일이 부가가치세 도입할 때를 재무부 장관이 50년간 논의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졸속으로 준비했다'며 사과했다고 한다. 그런데 행정부처 이전 문제를 하루아침에 했던 우리는 정신차려야 한다. 이제 시작이니 세대를 거치면서 조금씩 합의를 진행하는 점진주의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포퓰리즘 단절 대책'을 세웠으면 한다. 전 국민에 영향 미치는 사안을 대선공약에 내세우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란 말을 절감했다. 정치인은 근본적으로 포퓰리즘과 지역적 이익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과학적 전문성과 분야별 지식을 갖고 이를 견제하는 것은 공무원의 권한이자 의무다. 이게 3권 분립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전문성은 어디로 갔는가.

△신도철 교수 = 포퓰리즘을 극복해야 되겠다는 문제의식은 이번 발표에 미진했던 것 같다. 국가가 중앙집권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지역발전도 중앙에서 결정한다. 그러다 보니 포퓰리즘적인 정치공약이 넘쳐나고 이번 해법도 정부가 기업 유치와 인센티브를 다 준비했다. 지방분권이 중요하다.

△이 교수 = 지식인 사회에서는 '무엇을 위한 세종시냐' 의도와 목적이 불분명하다는 비판이 많다. 충청도민 민심만으로 결정할 것은 아니다. 전 국토를 분배 투쟁으로 변질시켜서는 다음 대선에선 겉잡을 수 없다.

△황 교수= 이제 대한민국에 위대한 정치인이 필요한 때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근본적이고 중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정략적 이유로 다음 선거에서 어떻게 이길지 고민하는 데 그친다면 하책만 나올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엄중하고 경고하고 싶다.

이준혁/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