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돌려줘.나도 먹고 살아야 돼."

지난해 말 영업정지 결정이 내려진 전북 전주시 태평동의 전일상호저축은행 본점은 연일 계속되는 예금주들의 시위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기자가 찾은 11일에도 예금자들이 집기를 집어던지고 안내판을 내동댕이쳐 바닥에는 유리조각 투성이였다.

자산 규모만 1조3000억원이 넘는 전일저축은행은 한때 전북은행을 위협할 정도의 수신 규모와 인지도를 갖춘 대형 금융회사였다. 자산 규모 1조원이 넘는 금융회사가 부실로 영업정지 당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예금자만 6만8000명이 넘는다.

이 중 예금자 보호 한도인 1인당 5000만원을 넘게 예금한 사람은 3550명.이들의 예금 합계만 2300억원에 달한다. 보호받는 1700억원을 제외한 600억원은 고스란히 예금자 피해로 남을 공산이 크다. 이들 대부분은 60세 이상의 영세 재래시장 상인들이다.

예금보험공사의 조사가 진행 중이어서 곧 정확한 부실 사유가 밝혀지겠지만 경영진의 불법 행위가 거의 없었고,대주주에 대한 특혜성 대출이나 동일인 여신 한도를 초과한 대출도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 관계자는 "굳이 원인을 따지자면 지역경체 침체로 중소기업과 가계대출 부실이 고스란히 쌓인 결과"라고 설명했다. 시중은행보다 높은 금리 유혹에다 1인당 5000만원까지 원리금을 보장받는 예금자보호제도에 편승한 예금이 쏟아져 들어왔지만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다 무리한 중소기업 및 가계 대출로 이어지면서 부실이 커진 것이다.

서울 강남 테헤란로에 입주한 저축은행 창구에도 고액 자산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상대적으로 건실한 곳이지만 이들도 마땅한 대출처를 찾지 못해 건설사 지원을 위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투자하거나 대부업체에 빌려주는 방식으로 돈을 운용하는 곳이 많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서민 금융회사가 예금자 보호 제도에 안주하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저축은행 전체 수신액은 63조원에서 75조원으로 1년 동안 20% 가까이 늘었다. 개별 저축은행의 덩치도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할 경우 서울에 2개를 포함해 최대 5개까지 신규 점포를 낼 수 있도록 함에 따라 부실한 곳을 인수한 우량 저축은행의 수신액은 5조원을 훌쩍 넘는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정부의 땜질식 처방으로 대형화한 저축은행이 경기 침체기에 대형 부실을 유발할 수 있다"며 "예금자 보호의 차등화나 은행보다 더 엄격한 감독 및 검사 등의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전주=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