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전 정책금융기관으로 탄생한 한국증권금융이 민간 상업금융회사로 탈바꿈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30여년간 몸담아 온 공직생활을 떠나 지난해 11월 민간에 첫 발을 내디딘 김영과 사장(55·사진)이 증권금융의 기업공개(IPO)를 중장기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자본금을 크게 늘려 경쟁력을 키워내려면 '증시상장'이 유일한 대안이란 것이다. 이를 위해 김 사장은 중장기 계획을 담은 '비전 2015'를 오는 3월께 내놓을 계획이다.

◆"대규모 자본확충 절실하다"

증권금융은 1995년 국내 자본시장의 빠른 성장을 돕고 시장에 자금을 공급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주식·채권 등 증권발행과 유통에 필요한 자금 및 각종 서비스를 금융투자업계 등에 제공하는 것이 그간 주요 업무였다.

그러나 국내외 금융환경이 매년 급속히 변해가면서 증권금융의 정책적 기능은 퇴색되기 시작했다. 상업금융기관으로서 자립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증권금융은 결국 IPO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자립의 기반을 마련한다는 복안을 내놨다.

김 사장은 13일 한국경제신문의 온라인미디어 <한경닷컴>과 인터뷰를 통해 "금융시장이 급속히 대형화·겸업화·국제화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증권금융이 자본공급기능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선 대규모 자본 확충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증권금융의 자본금은 3400억원에 불과한 데다 환금성에 제약이 있는 비상장회사라는 점 등을 감안할 때 IPO 이후 증시상장은 필수요건"이라고 강조했다. 구주주들이 참여하는 유상증자로는 자본을 대규모로 늘리는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사장은 또 IPO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차질 없는 기본업무 수행'이라고 강조했다. 기존 업무에서 경쟁력을 발휘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어야 성공적인 IPO를 위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시장으로부터 공정한 평가를 받아내려면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사업구조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 뒤 "최근 회사의 여·수신 기반과 수익성이 크게 향상되고 있고, 금융위기 속에서 자본시장 안정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기 때문에 IPO에 대한 우호적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며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로 증권금융의 여·수신 규모는 지난해말 기준으로 각각 5조5000억원과 9조8000억원을 기록해 전년동기대비 19.4%와 70.3% 증가했다. 이러한 가파른 성장에 힘입어 3월결산법인인 증권금융의 2009회계연도 상반기(2009년 4월~9월) 당기순이익은 1085억원을 달성했다. 이는 2008회계연도 전체 순이익(1220억원)을 반기 만에 벌어들인 것이다.  

김 사장은 그러나 증시상장이 급하게 서둘러서 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증권금융의 IPO는 내부 역량 뿐만 아니라 자본시장 전반의 상황과 주주·이해관계자들과 공감대를 먼저 형성해야 가능한 일이라는 판단에서다.

◆증권금융이 공공기관?…"공공기관 될 이유 없다"

지난 해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이 공공기관으로 지정되자 증권금융 임직원들은 술렁거리고 있다. 공공적 업무에 따른 일부 독점수입이 있어 증권금융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 사장은 "증권금융은 공공기관으로 지정될 이유가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투자자예탁금 및 우리사주를 관리하는 등 일부 공공적인 성격의 업무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일부 업무로 인해 증권금융이 공공기관에 해당한다는 것은 오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상 증권금융은 공공기관의 지정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증권금융이 독점업무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전체 수입 중 20% 가량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증권담보대출, 환매조건부채권(RP)매매 및 수탁업무 등 증권금융 영업이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업무는 자본시장법상 인가대상 업무라는 것. 즉, 이들 업무는 은행 증권회사 보험회사 저축은행 등도 취급이 가능해 경쟁할 수 있는 분야라는 게 김 사장의 주장이다.

그는 "정부의 출자 지분도 전혀 없을뿐 아니라 주요 경영방침도 불특정 다수인 주주들이 개최하는 주주총회와 이사들이 참여하는 이사회에서 결정된다"며 "이러한 지배구조를 갖고 있는 증권금융이 어떻게 공공기관이겠느냐"라고 오히려 반문했다.

◆경쟁력 확보방안은 'IT투자' 그리고 '전문인력'

이렇게 상업금융회사로 거듭나고 있는 증권금융은 앞으로 IT(정보기술) 투자와 전문인력 육성에 전력을 쏟을 계획이다. 이를 통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얻고, 다른 금융기관들과 치열하게 경쟁해 보겠다는 뜻이다.

김 사장은 "증권금융의 대표적인 경쟁업무는 증권담보대출업무와 커스터디업무(유가증권 보관관리업무) 그리고 증권대차거래 중개업무"라고 소개했다. 또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자를 위한 토털 서비스 프로바이더(total service provider)로서 자금과 증권의 공급이라는 전통업무를 토대로 최근 확대되고 있는 커스터디업무, 증권대차거래중개업무와 연계시켜 시너지 창출에 초점을 맞춰 나갈 계획"이라고 단기 경영방침을 밝혔다.

나아가 글로벌 커스터디언과 전략적제휴 및 헤지펀드 등 고부가가치 커스터디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 과감한 IT투자와 전문인력 육성에 회사 역량을 집중시킬 예정이다.

김 사장은 이 외에도 투자자예탁금, 증권사 CMA(종합자산관리계좌), 신탁자금 등 다양한 증시자금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확실한 정체성을 구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길을 만드는 자는 세상을 지배한다'…인재(人材) 중시 경영

"7세기 말, 돌궐족을 지금의 몽골지역에서 터키까지 무려 8000Km를 이동시켜 정착시킨 돌궐제국의 영웅 돈유크의 비문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멸망하고, 길을 만드는 자는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어떤 길을 만들고,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질 것입니다"

김 사장은 2010년 새해 첫날 임·직원들에게 이같은 말을 인용해 신년사를 썼다. 30년간 공직생활에 익숙했던 그도 생존을 위해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 실감난 것일까. 김 사장은 행정고시 22회로 공직에 입문해 기획예산처 재정정책과장,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경제협력국장, 경제부총리 비서실장,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 등을 지냈다.

그는 "정책과 영업의 최종 수요자인 시장과 투자자를 위해 일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과거 공직생활과 민간 CEO로서 지금 생활이 큰 차이는 없다"면서도 "하지만 생존을 위해 시장에 직접 뛰어들어 빠른 의사결정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게 민간 CEO로서 가장 어렵고 두려운 부분"이라고 털어놨다.

모든 경영은 인재(人材)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김 사장은 "증권금융에서 가장 소중한 재산은 바로 '사람'"이라고 주저없이 말했다. 현대 금융산업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지식기반사업으로, 인적 경쟁력이 차별화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김 사장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원칙을 확립한 뒤 체계적인 연수 프로그램을 시행해 직원들 각자가 맡은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직원들에게 기회와 동기를 부여할 것"이라며 "개인의 성장과 조직의 발전이 융화될 수 있도록 투자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j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