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을 목적으로 현대적인 최초의 가슴성형 수술이 시행된 것은 1890년대 오스트리아 빈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빈에서 활동하던 의사 로버트 거서니가 최초로 여성의 가슴에 파라핀 주사를 놓는 것을 시도한 이래 ‘예쁜 가슴’을 만들기 위해 여러 의사들의 칼질과 주사질이 이어져왔다. 하지만 파라핀은 몸에 주입되더라도 다른 부위로 이동하는 불행한 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1차 대전쯤엔 성형수술 현장서 폐기돼 버렸다.



이어 1920년대와 30년대에 이르면 의사들은 엉덩이나 복부에서 지방을 떼어다가 가슴에 이식하는 ‘친환경 웰빙 성형재료’를 성형수술에 접목해 보기에 이른다. 하지만 지방은 다시 체내에 흡수되는 문제가 있었고,설상가상으로 수술부위에서 균일하게 없어지는게 아니라 울퉁불퉁 볼썽 사납운 모습을 남기는 후유증도 있었다.

이후 영화산업의 중심지가 되면서 외모에 대한 투자와 관심이 다른 지역을 압도했던 미국 로스엔젤리스 지역 의사들을 중심으로 성형산업이 주도되기에 이른다.LA에서 활동하던 뉴욕대 의대출신 로버트 앨런 프랭클린은 평범한 폴리우레탄으로 추정되는 서지폼을 가슴에 삽입,최초의 인공보형물을 통한 성형수술의 장을 열게된다.

이후 10년간 여러 이물질들이 여성의 가슴속으로 들어가 자리잡았지만 모든이를 언제나 만족시키는 재료는 나타나지 않았다. 유리공에서부터 폴리에스테르계 합성물인 테릴린,나무,연골,폴리비닐 스펀지에서 테플론까지 다양한 재료들이 시험됐다.‘20세기 섹스 심벌’로 알려진.마를린 먼로는 스펀지를 이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무튼 이런저런 재료들의 도움으로 남다른 발육상태를 보이는 여성들이 늘게 됐고, 1956년 패션잡지 『코스모폴리탄』은 ‘마를린 먼로가 많아지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이 때 성형에 대한 사회분위기는 1958년 존스홉킨스대 조사 결과가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당시 조사에서 유방확대를 시도한 여성들은 “패드브라나 뽕을 착용하면 마치 자신이 가짜인 것 같고,사기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펀지에 인체조직이 침투하면서 굳거나,암을 유발하는 부작용이 발생하면서 곧 용도 폐기돼 버렸다.결국 후발주자로 나타난 것이 실리콘이었다.

실리콘이 언제부터 여성들의 들어갔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일본인 매춘부들에게 최초로 시술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성형수술을 한 일본인 매춘여성들은 주둔한 미군을 상대하면서 보다 크고 서구적인 가슴을 가지면 더 많은 손님을 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과감하게 실리콘을 도입했다는 것이다.이에 따라 불순물이 많이 포함된 산업용 실리콘이 2차대전후 요코하마 항구 부두에서 수상하게 사라지곤 했다고 한다.

얼굴 성형의 역사를 살펴보자면 1901년 폴란드의 한 귀족여성이 베를린의 외과의사인 오이겐 홀란더에게 “수술을 해달라”고 졸라서 탄생했다고 전해진다.유명 인사중 최초로 성형수술을 한 사람은 프랑스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로 1908년 첫영화 ‘엘리자베스 여왕’을 촬영하기 직전에 얼굴에 손을 댓다고 한다.

1931년 뉴욕에선 펜실베니아 호텔 대연회장에서 공개적인 성형수술 시범이 이뤄지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크럼 박사라는 의사가 당시 60대의 유명배우였던 마르타 페텔을 1500여명의 구경꾼들이 보는 앞에서 얼굴 피부의 일부를 짼뒤 잡아당겨 평평하게 해서 어려보이게 만드는 성형수술했다고 기록이 남아있다. 당시 공개수술은 “놀랄만큼 간단해서 마치 바나나 껍질을 벗기는 것처럼 쉬워보였다”는 구경꾼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전해지고있기도 하다.

최근 유명 연예인들이 잇따라 성형고백을 하고 있다. 성형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시대마다 다르고, 성형기술의 발전도 매우 빠른게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 성형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 상당히 무모하고, 위험하며, 황당하고 우수꽝스러운 점이 많이 내포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날 성형의 사회사에 대해 후대인들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지 궁금해진다. 현대 성형기술은 이제 안전한 경지에 도달한 것일까.


<참고한 책>
테레사 리오단, 아름다움의 발명, 오혜경 옮김, 마고북스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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