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전식 전지(2차 전지) 보급이 확대되면서 건전지 업계가 된서리를 맞고 있다. 디지털카메라 MP3플레이어 전자수첩 전기면도기 등 일회용 건전지(1차 전지)를 사용하던 IT(정보기술) 기기들이 속속 충전식 전지로 동력원을 교체하고 있어서다.

13일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AC닐슨에 따르면 지난해 일회용 건전지 판매량(소매점 기준)은 1억9908만개로 2008년(2억1163만개)에 비해 5.9% 감소했다. 국내 일회용 건전지 판매량이 연간 2억개 이하로 떨어지기는 2005년 이후 처음이다.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알카라인 건전지가 5.5% 줄었고,망간 건전지도 12.9% 감소했다.

하지만 지난해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 여파로 판매 가격을 올린 덕분에 총 판매금액은 1307억원으로 2008년(1298억원)보다 0.7% 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디지털 도어록과 리모컨,탁상시계 정도를 빼면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각종 기기의 대부분이 내장형 충전식 전지로 전환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건전지가 사양화 단계로 접어드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국내 일회용 건전지 시장은 디지털카메라와 MP3플레이어 등이 일반에 보급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꾸준히 상승세를 탔다. 당시만 해도 대다수 제품이 일회용 건전지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충전식 전지를 내장한 IT 기기가 잇따라 나오면서 건전지 시장의 성장세는 둔화됐다.

건전지 업계는 판매 감소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시장의 트렌드가 변화한 만큼 일회용 건전지 판매량이 앞으로도 꾸준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건전지 업체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판매가격을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이 상승세를 타고 있는 만큼 가격조정이 불가피한 상태"라며 "올해 판매량이 줄더라도 가격 인상 효과로 금액 측면에선 작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1위 업체인 에너자이저는 가격 인상과는 별도로 일반 알카라인 건전지보다 판매가격이 20%가량 높은 프리미엄 제품 판매를 늘려 전반적인 판매량 감소를 만회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와 함께 2003년 미국 본사 차원에서 인수한 면도기 브랜드 쉬크 및 2007년 합병한 여성용품 및 스킨케어 브랜드 플레이텍스와 공동 마케팅을 강화하기로 했다.

토종 건전지 업체인 벡셀은 '뜨는' 시장인 충전식 전지 분야를 강화하기로 했다. 주요 공략 대상은 무선 청소기 등 소형 가전제품을 만드는 국내 중소기업과 무전기 등 충전식 전지를 많이 쓰는 군부대다. 회사 관계자는 "충전식 전지 시장이 커지고 있는 점을 감안해 최근 관련 영업부서를 확대했다"고 말했다.

듀라셀을 판매하는 P&G는 침체에 빠진 건전지 시장의 돌파구를 휴대용 충전기 시장에서 찾았다. 주요 IT 기기들이 속속 충전식 전지로 교체하는 점에 착안,작년 하반기 '듀라셀 인스턴트 USB 휴대용 배터리팩'을 선보인 것.야외에서 휴대폰이나 MP3플레이어의 배터리가 방전됐을 때 이 제품과 연결하면 곧바로 충전이 된다. 휴대용 배터리팩은 평소 USB로 PC에 연결해 충전해 놓은 뒤 들고 다니면 된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