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일기예보에 대한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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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에 한번 재난예방으로도 가치커…맞히고 틀리고식 비판은 도움안돼
백호(白虎)의 새해가 엄청난 폭설로 시작됐다. 한반도 전체가 흰눈에 파묻혀 버렸다. 서울에는 기상관측 이후 가장 많은 눈이 쏟아졌다. 그런데 함께 찾아온 매서운 한파가 문제를 정말 심각하게 만들어버렸다. 일주일이 넘었지만 지금도 서울은 폭설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추운 겨울과 많은 눈은 더 이상 풍년의 예고라는 희망이 아니라 끝없는 원망의 대상일 뿐이다. 세상이 그만큼 달라진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기상청이 집중적으로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폭설을 '충분히' 정확하게 알려주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다. 인터넷에는 기상청을 비판하는 글들이 수없이 올라온다. 그런데 기상청에 대한 불만의 내용이 정말 이상하다. 도대체 기상청의 발전이나 더 나은 일기예보를 원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비판이라고 볼 수가 없다.
지난 연말에는 기상청이 이틀 전부터 알려준 일기예보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적설량도 예보의 '3배'에 가까운 2.6㎝나 쏟아졌다는 것이 비난의 핵심이었다. 이번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울에 '10㎝ 이상'의 폭설이 내릴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는 완전히 무시돼 버렸다. 일기예보가 재미삼아 하는 '숫자 맞히기 놀이'로 착각한 것이 아닌가 싶은 수준의 비판이다.
무엇보다도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언론이 무작정 기상청의 입장을 옹호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좋은 소식을 강조해서 사회를 밝게 만들어야 한다는 도덕적 주장도 아니다. 일기예보에 대한 상식을 벗어난 비판은 그만 둬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언론의 상식 수준은 염화칼슘 제설제에 대한 보도에서 가장 확실하게 드러났다.
어느 공영방송의 기자는 염화칼슘을 너무 '일찍' 뿌려서 소용이 없었다고 당당하게 보도했다. 대부분의 신문은 정반대로 서울시가 너무 '늦게' 뿌려서 문제였다고 야단들이었다. 날씨가 너무 추웠고,눈이 너무 많이 내린 것이 문제였다는 고등학교 수준의 상식을 전해 준 언론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제 일기예보를 다시 봐야 한다. 기상청이 소중한 국가 예산으로 일기예보를 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일기가 고르다면 굳이 예보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일기가 불순하기 때문에 예보를 하는 것인데,국민들 대부분은 이를 맞다 틀리다 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항상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시각과 적설량을 언제나 정확하게 예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기상청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주말 나들이에 필요한 정보의 제공도 현재 우리의 형편에서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일기예보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는 그것이 악천후에 의한 기상재해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가장 현명하고 경제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재난예방 수단으로서의 일기예보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필요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일기예보는 얼마나 맞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열 번 중 한 번을 맞히더라도 그를 통해 재난예방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기상청을 가족 다음으로 신뢰한다는 일본의 일기예보도 우리보다 월등히 나은 것이 절대 아니다.
물론 기상청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는 있어야 한다. 기상위성도 필요하고,기상청의 명성을 살려줄 '히딩크'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상청이 마음놓고 악천후 예보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고,정부가 앞장서서 일기예보에 따라 재해예방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틀리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번의 기상재해를 예방하는 것만으로도 일기예보는 충분히 존재가치가 있다. 기상재해의 규모가 나날이 커져 간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이덕환 <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
이번에도 역시 기상청이 집중적으로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폭설을 '충분히' 정확하게 알려주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다. 인터넷에는 기상청을 비판하는 글들이 수없이 올라온다. 그런데 기상청에 대한 불만의 내용이 정말 이상하다. 도대체 기상청의 발전이나 더 나은 일기예보를 원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비판이라고 볼 수가 없다.
지난 연말에는 기상청이 이틀 전부터 알려준 일기예보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적설량도 예보의 '3배'에 가까운 2.6㎝나 쏟아졌다는 것이 비난의 핵심이었다. 이번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울에 '10㎝ 이상'의 폭설이 내릴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는 완전히 무시돼 버렸다. 일기예보가 재미삼아 하는 '숫자 맞히기 놀이'로 착각한 것이 아닌가 싶은 수준의 비판이다.
무엇보다도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언론이 무작정 기상청의 입장을 옹호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좋은 소식을 강조해서 사회를 밝게 만들어야 한다는 도덕적 주장도 아니다. 일기예보에 대한 상식을 벗어난 비판은 그만 둬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언론의 상식 수준은 염화칼슘 제설제에 대한 보도에서 가장 확실하게 드러났다.
어느 공영방송의 기자는 염화칼슘을 너무 '일찍' 뿌려서 소용이 없었다고 당당하게 보도했다. 대부분의 신문은 정반대로 서울시가 너무 '늦게' 뿌려서 문제였다고 야단들이었다. 날씨가 너무 추웠고,눈이 너무 많이 내린 것이 문제였다는 고등학교 수준의 상식을 전해 준 언론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제 일기예보를 다시 봐야 한다. 기상청이 소중한 국가 예산으로 일기예보를 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일기가 고르다면 굳이 예보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일기가 불순하기 때문에 예보를 하는 것인데,국민들 대부분은 이를 맞다 틀리다 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항상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시각과 적설량을 언제나 정확하게 예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기상청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주말 나들이에 필요한 정보의 제공도 현재 우리의 형편에서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일기예보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는 그것이 악천후에 의한 기상재해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가장 현명하고 경제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재난예방 수단으로서의 일기예보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필요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일기예보는 얼마나 맞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열 번 중 한 번을 맞히더라도 그를 통해 재난예방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기상청을 가족 다음으로 신뢰한다는 일본의 일기예보도 우리보다 월등히 나은 것이 절대 아니다.
물론 기상청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는 있어야 한다. 기상위성도 필요하고,기상청의 명성을 살려줄 '히딩크'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상청이 마음놓고 악천후 예보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고,정부가 앞장서서 일기예보에 따라 재해예방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틀리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번의 기상재해를 예방하는 것만으로도 일기예보는 충분히 존재가치가 있다. 기상재해의 규모가 나날이 커져 간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이덕환 <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