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주중 미 대사로 존 헌츠먼 유타주 주지사를 발탁해 미국 정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헌츠먼 지사가 야당인 공화당의 차기 대선주자로 떠오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향후 정적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을 주중 대사로 임명한 이유는 단순했다. 헌츠먼은 중국어에 능통하고 중국인 소녀를 수양딸로 입양하는 등 중국인들로부터 호감을 살 수 있는 조건을 두루 갖췄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인사와 관련해 "중국과의 관계에 놓여 있는 광범위한 문제들을 고려할 때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중국 대사직이 중요하다"며 "중국과 새 파트너 시대를 열기 위해 헌츠먼 지사보다 더 적합한 사람을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드넓은 영토를 갖고 있는 중국은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다. 지역마다 언어(방언)와 풍속,문화도 다르다. 베이징에서 태어나고 교육받은 토종 중국인도 다른 지역 중국인을 확실하게 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외국인이 중국의 이런 문화적 특성을 단기간에 이해하고 소화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향후 한국이 중국과 발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하려면 중국을 잘 이해하는 전문가그룹을 체계적으로 양성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요즘 다소 늘고는 있다지만 아직도 많은 공무원과 기업체 임직원들은 중국으로 해외연수 떠나는 것을 꺼리고 있다"며 "곳곳에 미국통(通)은 많지만 중국통은 절대적으로 모자란다"고 전했다.

반면 중국 내 '한국통'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 유학생들은 5만명에 육박한다. 미국에 유학을 떠난 한국 학생들의 절반 수준이다. 게다가 한국 기업들의 중국 현지법인이나 지사에 근무하고 있는 중국인이 무려 70만여명에 달한다. 이들 대부분은 '한류(韓流)' 여파로 한국의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정치 · 경제현안에도 밝은 편이다.

정재식 경북대 교수는 "중국인들이 경제 파트너인 한국을 착실하게 알아가고 있듯이,우리도 전문인력 양성을 통해 중국에 대한 이해를 높여가야 한다"며 "중국어만 배우게 할 것이 아니라 중국인의 습성과 심리체계,문화와 예술 등에 대한 폭넓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중국 유학생들을 전략적으로 관리해 친한파로 육성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건국대는 지난 학기 '애니메이션' 전공 수업을 들은 20명의 학생 중 절반 이상이 중국 유학생이었다. 신지호 건국대 문화예술대 교수는 "급속도로 팽창하는 중국 영상산업 인력수요를 자체적으로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가면 중국에서 교수직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향후 한국과 중국 사이에 원활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할 가교역할을 할 수 있어 결코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전후해 중국 인터넷에 혐한(嫌韓) 분위기가 생겨나고,중국산 불량식품 수입 등에 따른 한국 네티즌들의 비난이 고조되는 등 두 나라 국민 감정도 예전에 비해 악화하고 있다. 양국 간 소통 채널로서 이들 유학생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이유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