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선 달의 주기나 점성학에 의거해 태아 성별을 점치는 경우가 많다. 슬로바키아 정신과 의사 출신 에우겐 요나스는 '여성의 임신능력이 자신이 태어났을 때의 달의 모습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생 동안 수태가 가능한 날을 표시한 도표까지 만들어 적중률 90% 이상이라고 우겼다. 논란이 요란했지만 달과 임신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믿음은 서양사회 일각에 여전히 남아 있다.
의학 이론을 동원한 여러 연구에도 불구하고 출생 성비(性比)를 둘러싼 비밀은 시원하게 풀리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여아와 남아의 비율이 100 대 105 정도 되는 것을 이상적으로 본다. 성장기 남아의 사망률이 높기 때문에 결혼적령기에 남녀 균형을 맞추려는 자연의 섭리라고 한다. 문제는 남아 선호가 강한 나라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인도와 중국이다. 우리도 그런 나라 중 하나로 꼽혀왔지만 이젠 달라지고 있는 모양이다.
국무총리실 산하 육아정책연구소가 2008년 태어난 2078명의 신생아 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아버지가 원했던 자녀 성별이 딸 37.4%,아들 28.6%로 나타났다. 나머지 34%는 아들 딸 모두 좋다고 답했다. 어머니 역시 딸이 37.9%로 아들 31.3%보다 많았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출생 성비가 여아 100명 대 남아 106.4명으로 거의 자연 상태를 회복한 터에 이런 조사결과가 나왔다니 고질적 남아선호 경향이 수그러든다고 봐도 무리가 없는 게 아닐까.
하긴 '딸 둘 둔 부모는 외국여행을 자주 하며 호사하지만 아들 둘 둔 부모는 서로 모시라고 밀어내는 탓에 객사하기 쉽다'는 우스개까지 나돈다. 여성의 위상이 높아지고 아내가 가계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가정이 늘어나기 때문일 게다. 이러다간 '똑똑한 아들 하나,열 딸 안부럽다'는 남아 출산장려 캠페인을 벌여야 할 날이 오지 말란 법도 없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