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1조원이 넘는 저축은행이 25개이고 큰 곳은 9조원을 넘는다. 그런데 규제 수준은 예전의 자산 몇백억원할 때 수준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

서민금융회사인 저축은행이 지방은행과 견줄 정도로 대형화된 것은 2005년부터다. 금융당국이 '인수합병(M&A)'을 통한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지점신설 혜택 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의 임시처방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이 다른 저축은행의 발행 주식을 15% 이상 인수하지 못하고 인수 규모도 자기자본의 80%를 넘기지 못한다'는 감독규정을 2005년 삭제했다. 부실한 저축은행을 우량한 저축은행이 인수할 수 있도록 M&A의 물꼬를 텄다.

여기에다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할 경우 투입자금 120억원당 1개씩 최대 5개까지 지점을 전국 어느 곳에나 신설할 수 있는 '당근'도 제시했다.

그 결과 1997년 말 231곳이던 저축은행이 105개로 줄었다.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한 저축은행들은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적으로 점포를 신설했다. 5000만원까지 원리금을 보장하는 예금보호 혜택을 더 많이 받으려는 자산가들과 예금유치를 늘리려는 저축은행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몸집이 급격히 커졌다.

문제는 예금보험기금을 투입하지 않고 구조조정을 진행하다 보니 일부 저축은행들의 덩치가 단기간에 너무 커졌고,이에 비해 감독규정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대형 금융회사가 부실해지면 금융시스템 위기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에 대주주 적격성 심사와 규제강화 등이 필수다. 하지만 저축은행은 여전히 예외 지대에 머물러 있다.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5%만 넘으면 되고 자산건전성 기준도 지방은행에 훨씬 못미친다.

◆규제 강화하고 지방은행으로 키워야

전문가들은 대형화된 저축은행이 서민금융회사로 남아있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이건호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시장 규모가 작은 서민금융만 하기에는 대형화된 저축은행의 규모가 너무 크다"며 "이 때문에 저축은행들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적극 나서게 됐고 부실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 저축은행에 대한 감독기준을 강화하고 지방은행으로 발전시키되 나머지는 서민금융회사로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중은행과 비슷한 수준의 자산건전성 기준을 적용하는 방안 등은 업계의 반발과 금융당국 및 국회의 무관심 속에 공전돼 왔다. 금융당국은 몸집이 커진 저축은행을 서민금융회사로 계속 놔둘 것인지,아니면 지방은행으로 전환시킬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이 없다.

◆예금보험제도 손봐야

1인당 5000만원까지 예금보호를 해주는 예금보험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금융위기로 경기가 나빴던 지난해 시중은행의 수신이 3% 증가하는 사이 저축은행 수신이 20%가량 늘어난 것도 예금보험 덕분이라는 의견도 있다.

문제는 과격한 예금보호제도의 변경은 금융시스템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저축은행 대표는 "예금보험 한도를 일괄적으로 낮출 경우 예금인출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감독당국과 금융계에서는 고금리를 제시하는 저축은행 예금에 대해서는 예금보호를 해주지 않는 등의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저축은행의 영업력을 개선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금융시장의 개방과 자유화로 저축은행의 입지가 매우 좁아졌다"며 "지역 내 서민대출 의무비율 규제를 완화하고 비과세저축예금을 허용하는 등의 영업력 개선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현석/이태훈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