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청양 칠갑산 자락에 자리잡은 칠갑농산(회장 이능구 · 68)에는 천장을 특수재질로 만든 약 1000㎡ 규모의 건조실이 있다. 이곳에는 회사의 '1급 비밀' 취급자로 인정받는 기술자 6명만 들어가 온도를 조절하고 면발을 뒤집어주는 작업을 한다. 건조실에서 하루에 나오는 쌀국수량은 1인분용 10개가 들어가는 상자로 1500~2000개 분량에 이른다.

이능구 회장의 설계로 2006년 8월 5억원을 들여 제작한 건조실은 수증기 바람을 이용하는 기존의 열풍 건조가 아닌 태양열 건조 방식을 사용한다. 통상 24시간 걸리는 일반 건조실과는 달리 약 두 시간이면 충분히 건조된다. 면발은 태양열로 자연 건조했을 때가 열풍 건조보다 쫄깃하고 씹는 촉감이 좋다. 이 회장은 "햇볕이 없는 날이라도 건조에는 별 차이가 없도록 시설을 마련했다"며 "이곳은 자식에게도 아직 개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칠갑농산 창업주 이 회장은 고향인 청양에서 농사를 짓다가 1976년 10월 쌀 한 가마 값(당시 8000원)을 들고 상경해 과일 노점상,아이스크림 장사를 하면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팔았지만 밥벌이도 안 됐다. 이 회장에게 돈을 벌 기회가 온 것은 이듬해 떡국떡을 팔면서부터였다. 당시에는 정육점에서 떡국떡을 팔았다. 이 회장은 거래를 트기 위해 매일 새벽 정육점을 찾아가 청소와 심부름을 했다. 주인들 눈에 들어 3개월 만에 거래처를 40개로 늘릴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이 회장은 밀가루로 만든 떡국떡 대신 100% 쌀로 만든 떡국떡을 팔았다. 쌀 떡국떡은 밀가루로 뽑은 떡국떡보다 열 배 더 비쌌지만 맛이 좋다는 평가가 잇따르면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1970년대 후반 서울 강남 일대의 개발로 슈퍼마켓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덩달아 매상도 늘어 하루에 떡국떡 50포대(1포대 37.5㎏)를 넘게 팔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그동안 떡방앗간에서 떡을 떼어다 팔았던 이 회장은 1981년 2200만원을 투자해 서울 독산동에 공장을 짓고 송학식품이란 간판을 내걸었다. 주문이 넘쳐 하루도 쉬지 않고 공장을 돌렸다. 게다가 재고미 처리 문제로 골치를 앓던 정부가 1986년 이 회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재고미로 떡국떡 · 면류를 만들면서 회사 규모도 커졌다.

1988년 독산동 공장을 확장하고 경기도 파주에도 공장을 새로 세웠다. 이때 하루에 처리한 물량은 80㎏짜리 정부 재고미 400~500포대.이 회장은 "당시 정부는 물만 닿으면 가루로 부서져 밥을 지을 수 없는 2년 이상된 재고미 1800만석 처분을 위해 골머리를 앓았다"며 "쌀로 가공식품을 만들어 정부 재고미를 소진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석탑산업훈장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이 회장은 돈을 벌면 고향의 발전을 위해 쓰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이런 이유로 1992년 청양 칠갑산 자락에 15억원을 투자해 국수공장을 짓고 회사명도 칠갑농산으로 바꿨다. 청양공장은 청양군 제1호 공장이다. 하지만 청양공장을 짓고 3년여 동안 30억여원의 손실을 봐야 했다. 생산 근로자로 뽑은 지역주민들은 날품 팔고 농사짓던 사람들로 숙련되지 않아 면발이 뭉치고 포장이 찢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 회장은 "초기에는 국수 10상자를 생산하면 두세 상자만 시장에 내다 팔 수 있었다"며 "꾸준히 기술을 가르쳐 3년쯤 지나자 버려지는 국수가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수박사'로 불리는 이 회장은 1994년 국내 최초로 생쌀 가루로 만든 생쌀국수를 개발해 식당에 7~10인분씩 묶음으로 팔았다. 밀가루에 생쌀가루를 30% 이상 섞어 국수를 뽑는 기술은 지금도 이 회사가 유일하게 갖고 있다. 이 회장은 "소위 쌀국수 제품들은 찐 쌀을 사용해 떡국 씹는 감촉이 나는 데다 조리법도 순밀가루 국수 조리법과 달라 소비자들이 외면해왔다"며 "하지만 생쌀가루로 만든 생쌀국수는 쫄깃한 맛에 조리법도 밀가루 국수나 라면과 같아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2,3일에 불과한 생쌀국수의 유통기간을 3개월 이상으로 늘린 것도 성공 비결이었다. 이 회장은 "생쌀국수는 습기로 인해 곰팡이가 피어오르기 때문에 오랜 기간 유통시킬 수 없는데 주정살균법을 개발함으로써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고도 3개월 이상 보관할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일본에 비해 면발을 뽑고 건조하는 기술이 뒤졌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며 "우리 회사에 일본 기업들이 면 건조 및 보관 기술을 가르쳐달라고 요청해올 정도"라고 소개했다.

외환위기 시절에도 국민들이 외식을 줄이는 대신 국수 라면 등의 면류 소비를 늘리는 바람에 파주공장을 증축한 데 이어 기존 시설을 완전가동했다. 2000년대 들어 해외 시장을 공략한 결과 미국 일본 중국 등 10여개국에 매년 350만달러 상당을 수출하고 있다. 생쌀국수 떡국떡 떡볶이떡 만두 등 300여 품목을 생산하는 이 회사의 올 매출 목표는 350억원.

맏딸인 이영미 대표(38)가 회사에 입사한 때는 한 · 일 월드컵 붐을 타고 수출이 본격화되던 2002년 말.이 대표는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외면하고 유학길에 오를 수가 없어 꿈을 접고 유통사업부 대리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는 낮에는 영업매장과 생산현장을 챙기고 저녁에는 관리업무를 하면서 이 회장을 도왔다. 이 회장은 살림보다 회사일에 빠져 사는 맏딸에게 2008년 4월 대표이사 자리를 맡겼다. 지난해 4월에는 미국 회계법인에서 공인회계사로 일하던 차녀 이영주 차장(36)이 입사해 사업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해 생쌀국수와 생메밀국수 등을 1회용 포장지에 넣은 소포장 제품을 신제품으로 내놓았는데 반응이 좋다"며 "면발을 뽑고 건조시키는 기술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일본에 앞선 만큼 '칠갑농산'을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