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원숭이 정리'의 창시자는 19세기 영국 진화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였다. 무수히 많은 원숭이가 각자 타이프라이터 앞에 앉아 무수히 많은 시간 동안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그중 한 원숭이는 마침내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걸작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 이 정리는 수학적인 농담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이젠 달라졌다. 웹2.0 세계에서 타이프라이터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네트워크로 연결된 개인용 컴퓨터이며,원숭이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무수히 많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기업가인 앤드루 킨은 신간 《인터넷 원숭이들의 세상》에서 요즘 세상을 '원숭이가 숭배받는 아마추어 컬트 시대'라고 표현한다. 웹2.0 세상.구글과 유튜브,위키피디아가 지배하는 세상.그러나 이는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그의 설명처럼 엄청난 검색능력을 자랑하는 포털 사이트는 사용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지만 자신의 사이트나 회사를 광고하려는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동영상은 진실 여부를 검증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퍼져 버리기 때문에 엄청난 사생활 침해와 무고 사건으로 비화할 수 있다. 실제 '앨 고어의 펭귄 군단'은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을 조롱하는 동영상으로 그의 주장을 덮고 싶어하는 미국 거대 기업이 제작해 올린 것이었다.

위키피디아도 마찬가지다. 맥도날드와 월마트 직원이 익명으로 위키피디아에 들어가 자기네 회사를 선전하려고 다른 링크를 의도적으로 막거나 경쟁사보다 봉급이 20% 적다는 내용을 삭제하는 등의 '사고'를 치지 않았던가. 진정한 민주주의의 승리로 일컬어지는 블로그와 미니홈피는 어떤가. 한마디로 '순진한 디지털 신봉자들만의 생각'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그는 "웹2.0 세상이 정부나 대기업 같은 권력과 자본을 가진 집단에 의해 너무나 쉽게 왜곡될 수 있으며 인터넷 원숭이가 되어 날뛰는 아마추어들에 의해 진실은 아주 쉽게 호도되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 다른 문제는 '인터넷 원숭이'들이 검색엔진을 통해 '자르고 붙이는 기술'을 키우면서 지적 절도광으로 변신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작품을 마구 리믹스해 놓고 자기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특히 아마추어 저널리즘을 경계한다. "시민 저널리스트들은 공식적인 훈련이나 전문지식도 없으면서 의견을 사실인 양,소문을 르포인 양,주석을 정보인 양 정기적으로 투고한다. 블로그 세상에서 자기 자신의 '저널리즘'을 발표하는 것은 무료이고 힘도 들지 않으며 성가신 윤리규정이나 고리타분한 편집 데스크도 없다. "

그러면서 '제대로 교육을 받고 선배가 엄격하게 감독하는 현장에서 보도 · 편집하는 체험을 거듭하면서 기술을 획득하는' 프로 저널리스트들과 얼마나 대조적인지를 일깨운다. 그는 또 뉴스와 음악,문학과 TV쇼,영화산업의 탄생과 육성을 도운 전통적인 미디어조차 공격을 받고 있는 현실을 되비춘다. 한 예로 타워레코드의 몰락이 '오프라인 vs 온라인' 대결에서 패배한 결과였다며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단지 음악매장이 아니라 음악의 다양성과 살아있는 교류"라고 개탄한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