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황폐했던 내詩밭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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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해서 머나먼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08쪽 | 7000원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08쪽 | 7000원
시인 최승자씨(58)가 1999년 《연인들》 이후 11년 동안의 침묵을 깨고 새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을 발표했다. 건강이 좋지 않아 경북 포항의 한 병원에서 요양하고 있는 그는 '시인의 말'을 통해 "오랫동안 아팠다. 이제 비로소 깨어나는 기분"이라고 근황을 전했다.
'별 아래 잠도 없이/홀로 가는 낙타 하나'(<홀로 가는 낙타 하나> 중)와 같다는 그는 '한 세월이 있었다/한 사막이 있었다//그 사막 한가운데서 나 혼자였었다/하늘 위로 바람이 불어가고/나는 배고팠고 슬펐다'(<한 세월이 있었다> 중)라고 말한다.
배고프고 슬픈 낙타와 같은 심정으로 쓴 듯한 그의 시편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시간과 세상에 대한 고찰이다. 사막처럼 황량한 상황에서 시간을 주시하며 얻은 결론은 <시간이 사각사각>에서 잘 드러난다. '한 불안한 결정체로서의/시간들도 있습니다/사각사각 바스러지는 시간들/사각사각 무너지는 시간들//사각사각 시간이 지나갑니다/시간의 마술사는 깃발을 휘두르지 않습니다. '
죽음에 대한 관심도 여전하다. '중요한 것은 삶이 아니었다/죽음이 아니었다/중요한 것은 그 거꾸로도 참이었다는 것이다//중요한 것은 삶 뒤에 또 삶이 있다는 것이었다/죽음 뒤에 또 죽음이 있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중) <구름 비행기>에서 그는 '내가 본 세상 병동 늘 그러하나/오늘은 구름 비행기 하나 이륙합니다/기장도 승무원도 탑승객도/단 한 명뿐인 구름 비행기입니다'라고 읊기도 한다.
시간과 소멸을 넘나드는 시선 끝에 그가 도달한 곳은 초월이다. '종래에서 다른 어떤 종래로 가는 초월성/숨이 막힐 듯한 외재성에서 내재성으로 가는 자유/혹은 더 큰 외재적 내재성으로 가는 자유/그것이 없다면 인류의 삶은 한갓 지네 같은 것이 될 수 있다. '(<반사(反史)> 중)
<내 시(詩)는 지금 이사 가고 있는 중>은 자신의 깨달음이 향후 작품에 어떻게 반영될지 예고하는 듯하다. '내 詩는 지금 이사 가고 있는 중이다/오랫동안 내 詩밭은 황폐했었다/너무 짙은 어둠,너무 굳어버린 어둠/이젠 좀 느리고 하늘거리는/포오란 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 '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별 아래 잠도 없이/홀로 가는 낙타 하나'(<홀로 가는 낙타 하나> 중)와 같다는 그는 '한 세월이 있었다/한 사막이 있었다//그 사막 한가운데서 나 혼자였었다/하늘 위로 바람이 불어가고/나는 배고팠고 슬펐다'(<한 세월이 있었다> 중)라고 말한다.
배고프고 슬픈 낙타와 같은 심정으로 쓴 듯한 그의 시편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시간과 세상에 대한 고찰이다. 사막처럼 황량한 상황에서 시간을 주시하며 얻은 결론은 <시간이 사각사각>에서 잘 드러난다. '한 불안한 결정체로서의/시간들도 있습니다/사각사각 바스러지는 시간들/사각사각 무너지는 시간들//사각사각 시간이 지나갑니다/시간의 마술사는 깃발을 휘두르지 않습니다. '
죽음에 대한 관심도 여전하다. '중요한 것은 삶이 아니었다/죽음이 아니었다/중요한 것은 그 거꾸로도 참이었다는 것이다//중요한 것은 삶 뒤에 또 삶이 있다는 것이었다/죽음 뒤에 또 죽음이 있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중) <구름 비행기>에서 그는 '내가 본 세상 병동 늘 그러하나/오늘은 구름 비행기 하나 이륙합니다/기장도 승무원도 탑승객도/단 한 명뿐인 구름 비행기입니다'라고 읊기도 한다.
시간과 소멸을 넘나드는 시선 끝에 그가 도달한 곳은 초월이다. '종래에서 다른 어떤 종래로 가는 초월성/숨이 막힐 듯한 외재성에서 내재성으로 가는 자유/혹은 더 큰 외재적 내재성으로 가는 자유/그것이 없다면 인류의 삶은 한갓 지네 같은 것이 될 수 있다. '(<반사(反史)> 중)
<내 시(詩)는 지금 이사 가고 있는 중>은 자신의 깨달음이 향후 작품에 어떻게 반영될지 예고하는 듯하다. '내 詩는 지금 이사 가고 있는 중이다/오랫동안 내 詩밭은 황폐했었다/너무 짙은 어둠,너무 굳어버린 어둠/이젠 좀 느리고 하늘거리는/포오란 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 '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