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노비를 잡아 현상금을 타내는 '추노꾼' 대길(장혁)은 달아난 노비 태하(오지호)를 추격한다. 태하는 소현세자 휘하의 장군이었지만 당쟁에 휘말려 누명을 쓰고 노비로 전락한 신세.양반댁 자제였던 대길도 10년 전 사랑했던 집안 하녀 언년(이다해)에 대한 복수심으로 추노꾼이 됐다. 언년의 오빠가 대길 집에 불을 지르고 언년과 함께 도주했기 때문이다. 이후 오빠는 병자호란의 난국에서 신분 상승을 위해 언년을 양반 후처로 밀어넣지만 언년은 결혼식 직후 달아난다. 거리에서 치한들에게 봉변당하려는 찰나,태하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때마침 추격해온 대길이 태하를 향해 화살을 쏘려는 순간,곁에 있는 언년을 발견하고 멈칫한다.

KBS 2TV 수목드라마 '추노'가 연초 안방극장의 새 강자로 떠올랐다. 6일 첫회 방송에서 시청률 22%를 기록한 뒤 14일 4회 만에 30.8%(TNS미디어 기준)를 기록했다. '아이리스'가 7회,'선덕여왕'이 14회 만에 시청률 30%를 돌파한 것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이 드라마는 일본과 태국 등에 고가로 선판매되는 등 해외 바이어들의 관심도 뜨겁다. 임재범의 주제곡 '낙인'은 음원사이트와 각종 포털 검색에서 1위에 올라있다.

'추노'의 성공에는 '아이리스'처럼 영화계와 '크로스오버'가 주효했다는 평가다. 영화 '7급 공무원'의 천성일 작가가 집필한 이 드라마는 사극의 개념을 바꿔 놓았다. 왕조 중심 사극에서 탈피해 양념으로만 조명되던 민초들의 삶을 정면으로 그리면서 해학과 풍자를 녹여냈다. 주요 인물들은 노비 혹은 추노꾼이며 양반계급은 조연에 불과하다.

이 같은 구성은 조선시대를 빌려 오늘날 서민의 고단한 삶을 그려내기에 안성맞춤이다. 경제위기로 고통받는 시청자들이 자신보다 더 힘겨운 삶을 사는 노비들에게서 위안을 얻는다는 분석이다. 이는 1000만 관객을 동원했던 흥행 사극 영화 '왕의 남자'의 인기 요인과도 비슷하다. 시청자들이 노비를 '아바타'로 삼아 고통을 감내하고 문제해결을 즐긴다는 설명이다. 제작사인 초록뱀미디어 임훈 PD는 "살아도 산 게 아니라는 노비의 대사는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신음하는 우리네 서민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고 말했다.

등장 인물들도 현실감이 있다. 선악을 초월한 복합적인 인물들이 젊은층에 어필하고 있는 것.대길은 노비 사냥꾼이지만 때로는 잡은 노비를 몰래 풀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등 뒤에 비수를 꽂으려는 또 다른 추노꾼과 그를 죽이려고 총까지 쏘며 뒤를 쫓는 노비 등이 겹겹이 에워싸며 흥미를 더해준다.

영화계 출신 답게 천성일 작가는 장황한 대사 대신 짧은 대사와 액션으로 이야기를 급진전시킨다. '추노'의 커트 수는 일반 드라마보다 2배나 많다.

또한 일본에서 빌려온 디지털 영화용 '레드원 카메라'로 찍어 고속과 저속을 자유롭게 구사한다. 가령 대길이 두발차기를 날리거나 칼싸움을 하는 신에는 슬로모션과 패스트모션이 적절히 어우러져 있다. 화질이 방송용 카메라보다 4배나 선명하고 편집도 용이한 레드원 카메라의 성능을 십분 활용한 결과다.

배우들의 앙상블도 뛰어나다. 장혁 이다해 오지호 등 주연뿐 아니라 공형진 조미령 윤문식 안석환 등 조연들의 연기가 조화를 이루며 드라마의 재미를 배가시키고 있다.

눈요깃거리도 충분하다. 장혁을 비롯한 추노꾼들은 조끼만 입고 다닌다. 그 사이로 드러나는 '초콜릿 복근'은 여성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무기다. 에로티시즘 코드도 강력하다. 추노꾼 왕손이(김지석)가 저잣거리에서 작부들과 밤을 지새우고 던지는 "나 숨겨주면 옷고름 풀어줄게" 같은 음담패설도 곳곳에 배치돼 있다. 다만 방송물로는 지나치다는 비판이 제기돼 수위 조절이 요구된다.

'추노'는 치밀한 준비 끝에 제작됐다. 2년 전에 준비된 대본을 바탕으로 작년 8월부터 촬영을 개시해 방영 시작 전에 절반 정도 완성했다. KBS 측은 원활한 제작을 위해 초록뱀미디어와 제작비 절반씩을 출연한 유한회사를 설립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