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섹스& 더 시티] 그녀가 돌아왔다…자유롭고 당당한 돌싱으로…
미혼 직장인 김진호씨는 며칠 동안 밤잠을 설쳤다. 거래처 여직원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려고 두 달 가까이 망설이다 슬며시 "결혼했느냐"고 묻자 "했었죠"라는 답이 돌아왔기 때문.이혼녀라는 사실을 알고 고민하다 결국 데이트 약속을 잡았다. 김씨는 "무엇보다 그 여자가 저에게 호감을 갖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혼이 결코 '훈장'일 수는 없다. 여성에겐 특히 그렇다. 물론 그렇다고 '흠집'도 아닌 세상이다. 직장에서도 "저 여자 이혼녀래"라며 잠시 수군거리는 정도에 그칠 뿐이다. 오히려 결혼생활에 한창 염증을 느끼는 기혼녀들이 '일찌감치' 결단을 내린 이혼녀를 은근히 부러워할 때도 있다.



◆진정한 솔로생활 만끽하는 그녀

국내 유수 패션 브랜드의 영업담당 매니저로 일하는 J씨(35).고교시절부터 연애를 시작해 결혼에 골인한 남편이 바람을 피우자 2년 전 미련 없이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재산 분할을 해주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명의를 바꿔놓은 시댁 식구들을 크게 원망하지도 않았다. 두 자녀도 전 남편의 뜻대로 남겨 놓았다. 처음엔 세상에서 버림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공연히 눈물이 나고 서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전세로 얻은 20평짜리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우울한 기분도 점차 사라졌다. 대신 통장 잔액이 불어나고 개인시간이 늘면서 진정한 솔로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한다. 결혼 전에는 몰랐던 '자유'라고 표현했다.

"친인척들이 많이 모이는 가족 모임이나 명절 때는 약간 곤혹스러울 때가 있어요. 주변 시선들에 신경이 좀 쓰이죠.하지만 그것만 빼면 정말 홀가분하고 자유로워요. "

서울 청담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나본 J씨는 패션업계 종사자답게 세련된 옷차림이었다. 몸매도 흐트러지지 않았고 얼굴도 예뻤다. "그래도 조금 외롭지 않느냐"고 물어봤더니 곧바로 "전혀!"라는 답이 돌아왔다. "같은 여자끼리 솔직하게 묻고 싶은 게 있다"는 사족(?)을 달고 조심스레 "섹스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봤다. J씨는 빙긋 웃더니 속내를 털어놨다.

"그게 말이에요,각자 하기 나름이에요. 여러 남자를 만날 수 있고 섹스를 할 수도 있어요. 중요한 것은 단순히 즐기는 차원을 떠나 제 자신의 자유로움,정체성,존중받는다는 느낌…,뭐 그런 것이에요. 물론 앞으로 다른 남자를 쫓아다니는 일은 없을 것 같아요. 그렇게 매달려봐야 종착역은 결국 결혼 같은 것 아니겠어요. 근데 지금은 다시 결혼하고 싶은 남자를 만날 가능성이 제로라고 봐요. 제 마음이 그래요. "

◆업무는 그대로 Go Go!

그토록 당당한 J씨도 시댁에 맡기고 돌아선 자녀들 얘기가 나오자 말을 아꼈다. "그냥 마음이 아프죠 뭐.불쌍하다는 생각도 들고 아이들에게 씻지 못할 죄를 지었다는…."

그렇다면 J씨 같은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들의 시선은 어떨까. 여직원 비율이 20%를 넘는 대기업 계열사의 사장을 맡고 있는 P씨(44)를 만나봤다. 소속된 팀의 직원 36명 중 16명이 여성인데,자신이 알기로는 2명이 이혼녀란다. 이혼 사실을 알리고 다닌 것은 아닌데도 워낙 입소문이 빠른 조직이라 모든 이들이 금세 알게 됐다고 한다. 초기 몇 달 동안은 이러쿵저러쿵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그 후에는 잠잠해졌다.

"요즘 그런 거(이혼) 별로 화젯거리도 안 돼요. 자주 만나는 거래처 사람들 앞에서도 스스럼없이 얘기하더라고요. 다만 젊고 미모가 빼어난 여성들이 이혼을 했다고 하면 관심을 갖는 남자들이 있긴 하죠."

'객관적'으로 보기에 이혼녀들이 어떻게 보이는지,그리고 이혼 전보다 행복해 보이느냐는 질문도 덧붙였다. "음….제가 그 사람들을 속속들이 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어요. 한 가지 확실한 점은 통상 남자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차분하고 안정돼 있다는 거예요. 업무 태도나 능력에도 변화가 없고요. 오히려 자신의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 전보다 훨씬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

◆비겁한 남자들

젊은 이혼녀들의 인간관계는 회사 안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회사를 빠져나오면 수많은 관계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명함 내밀듯이 알려야 한다. 자주 만나는 모임이라면 미리 알려 불필요한 억측들을 막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문제는 공식적인 관계의 서열과 규칙이 작동하고 있는 직장과 달리,사적인 자리에서 만나게 되는 남자들은 상대적으로 생각과 행동이 자유분방하다는 것.자신이 기혼이건 미혼이건 일단 상대가 이혼녀라는 생각이 들면 '접근'이 쉬울 것이란 착각에 빠지는 남자들도 있게 마련이다.

중견 출판사의 편집장인 H씨(38)는 이런 남자들에게 넌덜머리를 낸다. 5년 전 이혼한 그녀는 나름대로 구축한 자신의 세계에 만족해하며 살고 있다. 가끔 만나는 미혼 남자친구와 여행을 가기도 한다. 전 남편과 사이에 자녀가 없어 J씨보다 심적 부담도 적다. 그런데 얼마 전에 아주 황당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아는 사람의 주선으로 참석한 어느 골프모임에서 40대 중반의 사업가를 만났어요. 유부남이었지만 저명 작가들과 친분이 있는 데다 인상이나 매너도 좋아 따로 두어 번 만나 식사를 했어요. 근데 세 번째 만난 날 '오늘 같이 자자'고 하는 거예요. 어처구니가 없더군요. "

H씨는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한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쏘아붙였어요. '저하고 자려면 부인의 도장이 찍힌 이혼 서류부터 들고 오세요'라고 말이에요. 그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일어서더군요. 참 비겁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전형적인 '아니면 말고' 식으로 집적거리는 것 아닌가요?"

◆어쩔 수 없는 재혼의 공포

결국 이혼이 흔해졌다 해도 이혼녀들을 괴롭히는 난관들은 결코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김혜남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냉정하게 보면 이혼녀가 아직은 사회적 약자에 가깝다"며 "예전 같은 모멸감은 덜 느낄지 몰라도 '이혼=무장해제'라고 착각하는 많은 남성들로부터 자유롭기는 힘든 여건"이라고 말했다.

막막한 노후생활에 대한 걱정도 젊은 이혼녀를 괴롭히는 생각 가운데 하나다. 젊은 시절에는 일과 직장,그 나름의 경제적 능력과 사회 네트워크를 향유할 수 있지만 기나긴 노후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반대로 이것저것 재고 따져서 '적당한' 남자를 골랐다가 또다시 낭패를 겪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드는 게 사실이다.

김혜남 전문의는 "재혼을 통해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미리 그 결과를 알 수 없다는 게 문제"라며 "특히 재혼을 생각한다면 과연 결혼 뒤에 따라올 여러 제약조건을 감당할 자신이 섰는지부터 스스로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혼으로 결혼에 대한 환상이 깨졌지만 새로 다가올 사랑에 미리 겁먹을 필요도 없다"고 덧붙였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