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500억 들여 완공해 세종시에 기부

새로운 도시의 탄생을 위해 겪지 않으면 안 될 산통(産痛)일까?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건설이 진행되는 충남 연기군 미호천을 건너는 다리 위에는 '원안 사수' 등의 구호를 적은 깃발들이 바람에 나부꼈다.

건설현장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이번엔 '일류 기업의 세종시 입주를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펄럭였다.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발표 이후 여야 정치권과 여러 이익집단이 벌이는 찬반양론은 건설현장에도 고스란히 이어져 정반대의 선전문구를 적은 깃발과 현수막 등으로 대치하는 상황을 보였다.

이처럼 새로운 도시의 건설을 둘러싸고 사회적 진통이 계속되는 가운데 세종시 첫 입주시설로 장례문화센터가 지난 12일 완공된 것은 어찌 보면 아이로니컬하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도시에 '죽음'을 다루는 화장시설이 가장 먼저 들어섰기 때문이다.

준공식 후 사흘만인 지난 15일 찾아간 세종시 은하수공원 내 장례문화센터는 수정안을 둘러싼 논란과는 무관하다는 듯 연기군 남면 고정리 산기슭에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장례문화센터는 사면이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여 아늑한 분위기였고, 그런 산들이 이곳을 세종시의 다른 구역과 차단하는 역할까지 해주어 이른바 '혐오시설'에 대한 입주민들의 염려를 덜어내 줄 것으로 보였다.

SK그룹은 500억 원을 들여 2년여 만에 완공한 이 시설을 준공식과 함께 세종시에 곧바로 기부했다.

이 시설은 1998년 8월 폐암으로 타계한 최종현 SK그룹 전 회장이 "내가 죽으면 화장하고, 훌륭한 화장시설을 지어 사회에 기부하라"는 유지에 따라 조성한 것이다.

생전에 헬기를 이용해 울산 정유공장에 자주 다녔던 최 전 회장은 땅을 내려다보며 조상의 산소를 잘 모시려고 하는 우리나라 장묘문화가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가로막을 중대한 문젯거리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최 전 회장이 남긴 '화장 유언'에 따라 SK는 애초 서울 서초구 원지동에 화장장을 지으려 했으나 주민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이후 2007년 말 현재 터를 확보해 2년여의 공사 끝에 국내 최고의 화장시설을 완공했다.

▲세종시 은하수공원 내 장례문화센터의 장례식장 건물

총면적 36만㎡의 은하수공원 안에 조성된 장례문화센터는 화장로 10기를 갖춘 화장장, 2만1천442기를 수용할 수 있는 납골 봉안당, 접객실과 빈소 각 10개를 갖춘 장례식장, 홍보관 등과 함께 각종 부대 편의시설을 갖췄다.

고급 마감재 등을 사용한 장례식장은 서울시내 일류병원 수준이고, 입구에 대형 예술조각품을 설치해놓은 봉안당은 외양만으로 보면 미술관으로 착각할 만큼 세련되고 품격있게 설계돼 있다.

장례문화센터의 홍보관은 고대 이후 우리나라 장묘문화 변천사와 세계 선진국의 장례문화, 화장의 역사와 장점, 수목장·바다장·산호장 등 각종 자연장을 소개하는 전시·영상물로 꾸며졌다.

또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조성한 공원 내에는 수목장 외에 장미를 활용한 화초장, 비석과 봉분이 없는 잔디장 등을 설치할 수 있는 6만8천㎡ 규모의 자연장지도 마련됐다.

SK 관계자는 "화장로는 연소설비와 연소가스 냉각 및 처리설비 등을 최첨단 무공해 자동화 시스템으로 구축했다"면서 "화장로와 관련해 국내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던 다이옥신과 이산화탄소 등 배기가스 배출기준도 해외 선진국의 기준에 맞춰 설계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화장률이 선진국 수준인 70%를 웃도는 서울, 부산 등 대도시와 달리 전통 매장문화가 뿌리 깊은 농촌지역의 화장률은 50%를 넘지 못한다"면서 "더군다나 세종시 주변 충청지역의 화장률은 40~42%로 전국 평균치를 크게 밑돌고 있는데, 이번 장례문화센터 개관으로 이 지역의 화장률이 좀 더 높아질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세종시 은하수공원 내 장례문화센터의 봉안당 내부 모습

신도시의 핵심 기반시설인 종합 장례시설이 민관 협력으로 조성돼 세종시의 자족기능 강화에도 기여하게 됐다.

정진철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은 "세종시는 다른 지역에서는 주민 반대 등으로 부지 선정조차 여의치 않은 화장시설을 도시 건설 초기에 확보해 사회적 갈등에 따른 경제 비용의 낭비를 원천 방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건설 예정지역 내 산재해 있는 2만4천여 기의 묘지를 이전하고 도시 내 장사수요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시설의 건립이 절실한 과제였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SK가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자 장례문화센터를 건립해 기증함으로써 어려운 문제 하나를 덜 게 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 청장은 "현재 예산기준으로 25% 정도의 공사가 진행됐지만, 대부분 도로 등 기반시설을 갖춰가는 초기단계여서 도시의 용도가 바뀌더라도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며 "기업용 용지는 현재 30만 평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아 1차 선정기업 이후 추가로 입주할 기업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연기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ckch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