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최초 1급 공무원' '대통령보다 고액 연봉' 등으로 지난해 8월 스카우트 당시 유명세를 탔던 케네스 크로퍼드 기상청 기상선진화추진단장(65).최근 '수도권 눈폭탄' 등 눈과 관련한 몇 건의 예보 오보 논란에 휘말리며 호된 '한국 신고식'을 치렀다.

미국 기상청에서 예보관 등으로 30년을 지낸 베테랑 기상전문가인 크로퍼드 단장은 "오보에 대한 비난과 질책은 필요하지만 지나칠 경우 예보관들의 심리를 위축시켜 예보의 정확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기상 관측에 존재하는 한계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사태로 기상과학이 시민들의 기대 수준에 맞춰 얼마나 정확한 예보를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며 "한국의 기상 서비스가 선진 기상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변화의 유산을 꼭 남기겠다"고 강조했다.

▼최근 오보에 대한 비난이 적지 않습니다.

"지난 4일 서울 적설량 수치 예측이 틀렸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비판자들과는 조금 다른 생각입니다. 그날 눈은 지난해 12월28일부터 예보한 상태였습니다. 일주일 전에 이뤄진 매우 좋은 경보였고 과학에 기초한 합리적인 예보였습니다. 유럽,미국,일본 등에서 보유하고 있는 최고의 기상컴퓨터로 4일 서울의 적설량을 예측했더라도 25㎝를 맞히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예보 기준으로 그런 양의 눈을 맞히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

▼한국에는 기근이나 대홍수도 나랏님 탓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기상 당국에 대한 비난과 질책도 필요하지만 일방적,감정적 비난으로 재능있는 예보관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결국 마음도 (예보에서) 떠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제 고향인 미국 오클라호마에도 지난해 크리스마스 전날 34㎝가량의 폭설이 내렸습니다. 미국 기상청은 12시간 전에 10~20㎝의 눈이 온다고 예보했고요. 그러나 누구도 격렬하게 비난하지 않았어요. 일반적으로 기상관측에 존재하는 한계에 대해 이해해주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이번 오보 사태는 기상과학이 시민들의 기대 수준에 맞춰 얼마나 정확한 예보를 해야 하는지 다시 깨닫는 계기였습니다. "

▼최근 전 세계적인 한파와 폭설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한마디로 지구 온난화의 영향입니다. 지구 온난화로 최근 북극의 온도가 평년보다 10도나 높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상고온으로 북극 한기를 둘러싸고 있는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동아시아,유럽,북미 지역으로 한기가 남하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죠.열대 동태평양에서 발달하는 전형적인 엘니뇨와 달리 현재 열대 중태평양을 중심으로 엘니뇨 모도키라고 부르는 고수온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한국의 폭설은 이 영향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엘니뇨 모도키로 인해 필리핀 동부에 고기압이 발달하면서 한국의 남쪽으로 온난다습한 기류가 들어온 데다 시베리아 고기압까지 발달하면서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많은 눈이 내린 것이죠."

▼30여년간 예보관 한 길만 걸은 계기는.

"고등학교 때 수학을 가르쳐주신 담임선생님 덕분입니다. 제 재능을 알아보시고 어느날 미국 기상청에 추천해주셨습니다. 가정형편상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1961년 고등학교 졸업 1주일 만에 견습생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학교 공부와 일을 병행하기 시작했어요. 학 · 석 · 박사까지 기상학을 전공하며 5곳의 기상청에서 일했습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기본적이면서 꼭 필요한 기상 정보를 제공한다는 데서 정말 보람을 느꼈습니다. "

▼예보관으로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지금도 연월일을 그대로 기억할 정도로 생생합니다. 1984년 5월27일인데요. 그날 오클라호마에는 3시간 동안 무려 400㎜의 기록적인 폭우가 퍼부었습니다. 폭우가 쏟아지기 전에 폭우 특보를 발령했으나 결국 도시 전체가 파괴됐습니다. 14명이 사망하고 1억8000만달러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대규모 피해 가능성은 예상했지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게 원인이었습니다. "

▼대형 오보 사건 경험도 있는지요.

"1978년 어느 금요일 저녁이었어요. 당시 텍사스 지역을 덮고 있던 구름이 루이지애나 쪽으로 이동 중이었고,그날 밤 구름이 모두 지나갈 것으로 예보했지요. 다음 날 아침 텍사스 동부 지방에 토네이도 특보를 내려야 했습니다. 구름이 다 지나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가장 부끄러운 순간으로 기억합니다. "

▼정확한 예보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수 있을까요.

"정확한 날씨 서비스는 해당 국가 국민총생산(GNP)의 최소 10%에 해당하는 경제적 가치를 가집니다. 기상 서비스 선진화에 투자하면 효과도 큽니다. 제가 있었던 오클라호마주에서는 1달러를 기상 예보에 투자하면 오클라호마주 경제에 10달러의 가치를 생산하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최근 국가 차원의 의사결정에서 날씨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

▼대통령보다 많은 연봉을 받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미국에는 대통령보다 고액을 받는 공무원이 무척 많지만 한국에서는 제가 이 때문에 화제가 됐다고 들었습니다. 영광스럽기도 하지만 그만큼 어깨가 무거운 게 사실입니다. 기상청을 비롯해 한국 국민들이 제게 거는 기대도 아주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점을 항상 기억하려고 합니다. 받는 연봉 이상의 가치를 한국에 돌려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

▼작년 기상청 국정감사 내내 '열중 쉬어' 자세를 취한 이유는 뭔가요.

"세 가지 때문이었습니다. 먼저 정중하게 보이고 싶었어요. 한국은 예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니까요. 둘째는 똑바로 서 있기 위해서였습니다. 혹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자세가 흐트러질까 걱정스러웠던 거죠.마지막 이유는 긴장감을 감추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너무 긴장해서 두 손이 계속 바르르 떨렸는데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손을 뒤로 가렸던 거죠.(웃음)"

한국 기상서비스 선진화의 문제점을 꼽는다면.

"우선 내부 시스템이 미국에 비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시대적 인재양성 프로그램도 문제인데요,기존 도제식(徒弟式) 훈련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예보관 근무체제도 효율성 차원에서 바꿔야 합니다. 현재 12시간 단위로 교대근무를 하는데,하루 단위의 날씨 변화에 집중하려면 18시간 교대근무가 바람직합니다. 물론 그에 따른 인적 · 재정적 뒷받침이 있어야겠지요. "

▼예보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계획은.

"떠난 후에도 변화의 유산이 남겨지도록 하겠다는 각오로 일하고 있습니다. 레이더 자료를 국가적으로 공동 활용하는 체계와 고품질 다목적 통합 지상관측망을 구축할 생각입니다. 한국은 기상 레이더 장치가 26기 있지만 기상청 국토해양부,공군 등에서 서로 다른 기종을 운영하는 데다 사용 방법과 목적도 달라 자료 호환이 안 됩니다. 어떤 조직이나 인재가 최대 자산입니다. 과거 사례를 근거로 가상의 자료를 주고 0~12시간 내에 발생할 재해 기상 상황을 예측할 수 있는지 점검하는 '시뮬레이션 훈련 프로그램'을 도입할 계획입니다. 여기서 훈련받은 인재들을 0~12시간 초단기 예보에 투입할 방침입니다. 이 시간대는 슈퍼컴퓨터보다 사람의 힘이 더욱 필요하거든요. "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