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종로구 계동 현대건설 본사 사옥 로비에는 매일 오전 11시30분께면 밝은 주황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현대건설과 계열사의 사회봉사단원들이다. 이들은 인원점검을 마치면 일제히 주황색 도시락 가방을 들고 2인1조가 돼 흩어진다. 결식아동을 위한 점심 배달을 가는 것이다. 지난 12일 김성연 현대건설 주택영업본부 부장과 조성윤 사원도 도시락 가방을 들고 종로구 창신동 쪽방에 있는 조수연(가명) 어린이를 찾았다.

"안녕하세요. 추운데 방으로 들어오세요. "

수연이는 초등학교 2학년답지 않은 의젓한 태도로 김 부장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수연이는 한 평 남짓한 방에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다. 김 부장이 수연이에게 점심을 전달한 지 이날로 벌써 보름째다. 지난해 말부터 2팀이 한 주씩 번갈아 가면서 점심을 나르고 있다. 수연이는 점심 때가 기다려진다. 엄마가 만든 것 같은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어서다. 또 동네에 친구가 한 명도 없는데 매일 찾아와 말동무를 해주는 아저씨와 언니들이 친구 같다. 이날은 현대건설이 마련한 연필깎이와 지우개 등 학용품과 입술보호제도 받았다. 수연이는 요즘 컴퓨터에 재미를 붙였다. 지난해 말 김중겸 현대건설 사장이 특별히 선물한 컴퓨터 때문이다. 마침 이날 사회복지재단 관계자가 방문해 수연이에게 이메일 계정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수연이는 선천적으로 소아당뇨를 앓고 있다. 하루에 서너 번은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 이날은 당뇨수치가 평소보다 높아 수연이 아버지가 주사를 추가로 한 대 더 놓았다. 수연이는 주사에 익숙해졌는지 아픈 기색도 하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아파서 학교수업을 자주 빼먹었다. 그래서 이날도 3학년으로 올라가기 위한 시험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김 부장은 "수연이가 어제보다 몸이 안 좋은 것 같다"며 "수연이 손이 차갑다"고 걱정했다. 그는 처음에는 수연이가 낯을 가려 말을 잘 안 했는데 요즘은 먼저 말을 걸 정도로 밝아졌다고 귀띔했다. 김 부장과 조 사원은 40분 정도 머물며 수연이와 수연이 아버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뒤 "내일 보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대건설과 계열사가 '아동 결식'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방학이 되면 학교 급식이 끊겨 끼니를 거르는 결식아동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제공하는 '작지만 큰' 마음이 담긴 봉사활동이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빈곤아동 120만명 가운데 끼니를 거르는 결식아동은 45만명.이 가운데 급식조차 지원받지 못하고 있는 아동은 15만명에 이른다. 방학이 되면 결식아동들은 대부분 지역 내 복지관,방과후 공부방,지역아동센터 등에서 급식서비스를 받지만 지원체계 미비와 자원의 한계로 지원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이에 현대건설가족 사회봉사단은 지난달 28일부터 서울시 양천구와 종로구에 사는 결식아동들을 위해 매일 '희망 도시락'을 나르고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 무교동 어린이재단에서는 결식아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고조시키기 위해 현대건설 김 사장을 포함한 임직원 60여명이 따뜻한 도시락을 직접 싸서 전달하는 행사도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어린이재단 홍보대사인 탤런트 고두심씨도 참여했다.

고등학교 2학년인 오빠와 막내 남동생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중학교 3학년 재은이도 '희망 도시락'으로 따뜻하게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다. 부모의 이혼과 가출로 제때 식사를 챙겨먹지 못하고 라면 등 인스턴트 음식을 주로 먹던 재은이는 아토피 피부염까지 앓게 됐다. 지금은 현대건설 임직원들의 마음을 담은 점심도시락 덕분에 피부염이 많이 나았다.

현대건설 사회봉사단은 지난 연말에는 아이들에게 희망 케이크를 전달하고 꿈을 잃지 않도록 최고경영자(CEO) 추천도서(10분 동화,나의 라임오렌지 나무,함께 사는 세상 만들기 등 9권)와 참고서도 전해줬다. 현대건설은 1차로 이달 말까지 계속되는 '희망 도시락 나눔 활동'이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방학 때마다 지속적으로 봉사활동을 실시할 예정이다. 또 봉사 참여를 희망하는 임직원 수가 늘어나면 서울시 거주 결식아동들로 범위를 넓혀 사랑의 손길을 펼치기로 했다.

현대건설가족 사회봉사단은 아동 결식예방을 위한 기금조성에도 나섰다. 지난해 말 현대건설 여직원 동호회인 '현지회'는 '임직원 호프데이 행사'를 열어 마련한 수익금을 방학 중 결식아동 급식비 지원 명목으로 어린이재단에 기부했다.

현대건설가족 사회봉사단 단장인 정옥균 전무(사업지원본부장)는 "점심 도시락으로 소외된 아이들이 우리 사회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으면 한다"며 "우리 이웃들이 보다 쾌적한 주거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 현대건설 가족의 작은 바람"이라고 말했다.

현대건설가족 사회봉사단은 '희망 도시락 나눔 활동' 외에 기존에 해오던 저소득층 및 소외계층을 위한 '사랑의 집 고치기' 사업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인천 만석동 심상철씨의 단층건물 등 50여채를 무상으로 수리 또는 리모델링 공사를 해줬다.

올 프로배구 정규시즌에서 연승행진을 달리고 있는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배구단도 이웃돕기에 동참했다. 배구단은 매 경기 서브에이스와 블로킹은 개당 3만원,디그(수비로 스파이크를 받아내는 것)는 개당 1만원씩 해당 선수이름으로 적립해 현대건설이 출연한 지원금과 합해 이웃사랑 실천에 쓰기로 했다.

김문권 기자 m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