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지원정책은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키웠는가. 경쟁이 없는 틀 안에 안주해 온 한국 대학의 경쟁력은 어떠한가. 스크린쿼터제가 한국 영화의 부흥을 가져왔는가. 자유무역으로 국내 시장에는 외국 상품만 넘쳐나게 되었는가.

오늘날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기업들은 일찍이 세계시장에서 높은 파고에 부닥치면서 경쟁력을 길러왔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지금은 눈부신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반면에 보호의 틀 안에 안주했던 기업들,특히 많은 중소기업들은 경쟁력과 규모면에서 아직도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는 이들 중소기업인의 자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각종 보호 장치로 말미암아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으로 도약하려는 유인을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소기업들은 자금조달,조세,기술혁신,인력지원,수출 및 판로 개척,정보화 지원 등의 측면에서 광범위하게 지원받고 있다. 그 결과 대다수 중소기업들이 정부지원을 받기 위해 중소기업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또 이미 중소기업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기업들도 다시 중소기업으로의 복귀를 희망하고 있다. 중소기업 육성책이 이들을 안주의 틀 안에 가두어 경쟁력을 저하시킴은 물론 성장 의지를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사업체 수에서 99%,고용에서 88%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을 육성 ·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바로 이를 위해 만들어진 각종 지원책을 폐기하거나 전면 수정해야 한다.

안주의 틀 안에서 경쟁력을 키우지 못하고 있는 것은 대학도 마찬가지다. 최근 서울대가 법인화의 첫 단추를 끼움으로써 대학교육 제도 개선의 실마리를 풀 가능성을 열었지만,그동안 우리 대학들은 경쟁없는 무풍지대의 조직들이 어떤 성과를 보여주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총명한 두뇌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박사와 석사 등의 고급 인력을 스스로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에 많은 관객이 동원된 것도 결코 한국 영화 상영 일수를 의무화한 스크린쿼터제 때문이 아니다. 국산 영화 상영 일수를 줄이거나 아예 스크린쿼터제를 폐지한다는 논의가 뜨거웠을 때부터 한국 영화가 질적 도약을 시작했다는 사실은 보호막이 사라지고 경쟁의 파고가 찾아올 것이라는 예상 아래 영화 관계인들이 예전과는 다른 발상과 접근으로 영화 제작에 임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무역개방이 진일보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비록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아직 비준되지 않고 있으나,이는 미국의 사정에 더 큰 원인이 있다. 유럽연합 인도 등과의 FTA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자유무역의 이점은 이제는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범용한 지식이 되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자유무역으로 국부의 초석을 다졌고,홍콩은 일천한 부존자원밖에 가진 것이 없어도 자유무역과 시장경제로 지금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의 부를 누리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시 많은 식자들마저 우리의 산업,특히 농업이 초토화될 것으로 예상했으나,그와 반대로 농업을 비롯한 우리의 산업들은 건실하며 사람들은 다양한 상품을 낮은 가격으로 소비하는 등 개방의 이점을 한껏 누리고 있다.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특정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거나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다음에 개방의 문을 열어야 한다는 주장은 일견 그럴 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경쟁력은 굳게 닫힌 문 안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문을 활짝 열어젖힐 때부터 생기기 시작한다. 이는 곧 잠재적 경쟁력이 있는 경제주체들을 약자라는 이름 아래 보호하는 울타리를 과감하게 걷어내야 함을 의미한다. 자유경쟁체제의 정착을 시작으로 이제 우리 사회가 선진화의 길로 들어서기를 기대한다.

김영용 < 한국경제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