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겨울 트래킹] 일출에 물든 태백의 精氣, 서리꽃으로 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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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小寒) 추위에 단단히 탈이 난 것일까. 첫 새벽 이지러진 달빛이 창백하다. 천지사방을 뒤덮은 하얀 눈도 별무소용.달빛마저 얼어붙어 까까머리 나무 아래 눈밭까지 이르지 못하니 산중은 여전히 캄캄하기만 하다. 오전 5시45분.유일사 매표소와 바로 옆 매점의 창을 통해 비친 형광등 불빛을 출발선 삼아 태백산 정상 천제단으로 향한다. 추위는 극에 달했고 습기는 적당하니 장엄한 일출과 주목에 핀 환상적인 서리꽃이 기대되는 터다.
Take 1) 천제단을 향해
앞선 산행객들의 부산한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천천히 길을 더듬는다. 물기 없는 눈으로 다져진 산길은 날카로운 아이젠 자국으로 어지럽다. 귀까지 푹 눌러쓴 모자에 세상소리와 단절돼 마치 혼자 남겨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달이 반갑게도 동행을 자처한다. 둘러가지 않고 곧장 치고 올라가는 초입의 폭넓은 산길은 비교적 편안하다. 물론 딱히 험하거나 힘든 구간이 없는 게 이 유일사 코스의 덕목이긴 하다.
30분 정도 지나면서 비로소 몸에 피가 돌기 시작하는 것 같다. 얼음장 같던 손가락 끝이 따뜻해지며 등에는 조금씩 땀이 배어난다. 모자를 벗으면 머리 위로 김이 피어오르는 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산행의 좋은 느낌으로 충만해지는 때다. 산행 후 처음 만나는 벤치 옆 커다란 나무의 실루엣이 왠지 으스스하다. '살아 천년,죽어 천년'이라는 주목이다. 그 커다란 덩치와 형태에서 뭔지 모를 신령스러운 기운이 느껴진다.
곧이어 횡으로 이어지는 길은 숨을 고르기 알맞다. 첫 번째 주목이 있는 곳에서 10분쯤 뒤 S자로 꺾여 올라가는 모퉁이가 아주 환하다. 달빛이 아니라 가로등인데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캄캄한 하늘에서는 별빛이 쏟아지고 가로등 불빛을 받은 눈길은 반짝이를 뿌려 놓은 듯 환상적으로 빛난다. 이 모퉁이 바로 위에는 반대편 아래 계곡에서 올라오는 삭도시설과 산막이 있다. 산막 앞 나무의자에 앉아 까먹는 귤이 꿀맛이다. 산막에서 유일사까지는 2.3㎞,그리고 천제단까지는 1.7㎞가 남았다. 천제단으로 향하는 길은 11시 방향으로 이어진다. 지나온 길과는 달리 좁은 편.비로소 본격적인 산길이란 생각이 든다.
Take 2) 주목에 핀 서리꽃과 일출
여기서부터는 반드시 아이젠을 착용해야 한다. 자칫 미끄러져 다칠 가능성이 높아서다. 캄캄한 새벽이고 눈도 덮여 있어 어디가 길인지 분간하기 어렵기도 하다. 길이 아닐지 모른다고 의심하면서도 걸음을 옮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직전 위치로 되돌아와 고개를 들고 시선을 멀리 두는 게 상식이다. 그러면 틀림없이 앞선 사람들이 남겨 놓은 흔적의 윤곽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 흔적을 더듬어 따라가면 적어도 완전히 실패할 위험은 없다.
7시에 가까워지면서 하늘이 뻥 뚫린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줄기 굵은 주목과 어울린 나무들의 키가 작다. 천제단까지 0.7㎞.동쪽으로 겹겹이 이어져 흐르는 능선 위로 여명이 띠를 이뤄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천제단인 장군단과 천왕단 사이가 서리꽃 핀 주목 감상 포인트다.
태백산 천제단은 영봉의 '천왕단'을 중심으로 장군봉의 '장군단'과 영봉 남쪽 아래쪽의 '하단'을 통틀어 말한다. 천왕단은 하늘에,장군단은 사람에,하단은 땅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삼국사기를 비롯한 옛 문헌에 '신라에서는 태백산을 삼신오악 중의 하나인 북악이라고 하고 제사를 받들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천왕단을 배경으로 마주하는 일출! 수평으로 쏟아지는 붉은 빛에 기가 똘똘 뭉쳐 있는 느낌이다. 그 차가운 데 좌정하고 앉아 땅과 해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표정이 성스러워 보인다.
하산은 당골광장 쪽이다. 태백산 산신령이 됐다는 단종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단종비각을 지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샘,용정에서 목을 적시니 온 몸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망경사 매점에서 맛보는 컵라면도 몸에 보약이 되는 것 같다.
태백산=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 여행TIP
서울에서 경부·중부고속국도~영동고속국도~여주휴게소~중부내륙고속국도~감곡나들목~38번 국도~충주~제천~영월~정선 고한~두문동재터널~태백.영월 석항에서 31번 국도를 따르면 태백산도립공원을 지나 태백시로 들어선다. 중앙고속국도 제천IC에서 내려서 38번 국도를 타도 된다.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태백행 버스가 하루 16회 다닌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하루 7회 태백행 열차가 출발한다. 태백시내에서 버스나 택시를 타고 당골이나 유일사 매표소로 가 태백산 산행을 한다.
22일부터 10일간 열리는 태백산 눈축제가 업그레이드돼 볼 만하겠다. 높이 4m,길이 30m의 초대형 부조형 설상 등이 눈길을 끈다. 5000명 눈싸움대회도 기대된다. 스노래프팅과 개썰매 같은 다양한 겨울놀이도 즐길 수 있다. 매봉산 고랭지 배추밭은 눈풍경도 좋다. 4륜구동에 스노타이어를 장착하면 안심하고 오르내릴 수 있다.
연탄불로 굽는 태백 한우고기가 맛있다. 배달식육실비식당(033-552-3371),태성식육실비식당(033-552-5287),태백한우골(033-554-4599) 등의 고기 질이 좋다는 평이다. 등심과 갈빗살이 나온다. 1인분 200g에 2만원 선이다. 태백산 당골 들머리에 있는 무쇠보리(033-553-2941)의 곤드레나물밥이 깔끔하다. 6000원.황지 부근 승소닭갈비(033-553-0708) 등이 내놓는 '태백닭갈비'는 육수를 부어 자작하게 끓이는 게 춘천닭갈비와 다르다. 1인분 7000원.
오투리조트(033-580-7777)가 가족 단위 숙소로 안성맞춤이다. 리프트를 타기 위해 길게 줄을 서지 않고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점도 좋다. 태백산도립공원 내의 태백산민박촌(033-553-7460)도 괜찮다.
태백시청 관광문화과(033)550-2081,//tour.taebaek.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