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수록 손해죠.하루빨리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A돈육 관계자) "납품가 인하 요구가 지나치면 물건을 빼는 수밖에 없습니다. "(B식품 관계자)

지난 7일부터 시작된 '이마트발(發) 가격전쟁'이 과열양상을 보이면서 납품업체들이 죽을 맛이다. 이마트의 가격인하에 대해 경쟁 대형마트들까지 가세하면서 납품업체들은 이익감소 및 물량부족은 물론 역마진 사태까지 빚고 있다.

◆"팔수록 괴롭다"

이마트와 롯데마트,홈플러스의 일부 점포에서 판매하는 삼겹살 가격은 100g당 780~880원.인하 전(1600~1880원)에 비해 절반 또는 그 밑이다. 소비자 입장에서야 반갑지만 납품업체들은 "팔수록 괴롭다"고 입을 모은다. A돈육 관계자는 "삼겹살을 손해보면서 납품하는 것도 문제지만 삼겹살 물량 대느라 돼지를 많이 잡으니 안심,등심 등 비선호 부위가 재고로 남아도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마트에서 하루 100㎏ 미만으로 팔리던 삼겹살은 현재 1800㎏씩 팔려 저녁시간이면 품절사태를 빚는다

CJ햇반,오리온 초코파이,해태 고향만두,서울우유,맥심 모카골드 등 주요 가격인하 품목을 납품하는 업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CJ햇반의 경우 롯데마트에서 3650원에서 2500원으로 1150원(31.5%) 내려갔다. 오리온 초코파이는 3840원에서 850원(22.1%) 할인된 2990원에 판매 중이다. 대형마트의 판매 마진은 15% 안팎으로 CJ햇반이 548원,초코파이는 576원 각각 남았다. 하지만 현재 판매가격은 원가보다 300~600원이 낮다. 대형마트들이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한다 해도 납품업체들에도 피해가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납품 안 하는 게 낫다"

이마트가 '납품가격 인하 대신 자체 마진을 줄이겠다'고 밝혔지만 이 역시 업체들에는 인하 압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마트에 납품하는 업체들은 "이마트로부터 인하 요구를 받고 납품가를 낮췄다"고 밝혔다. C사 관계자는 "기존에 5만개씩 팔리던 제품을 20만개 이상 팔아주겠다고 제의하면서 그 대신 업체 측에 납품가를 일정 부분 낮추도록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D사 관계자는 "대형마트에서 납품단가를 낮추라고 압력을 넣는 데는 익숙해졌지만 요즘처럼 극심하게 시달리기는 처음"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에 일부 업체는 "인하요구가 무리하면 납품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이다. B사 관계자는 "최근 들어 유통업체들로부터 납품가 인하요구가 수시로 들어온다"며 "대형마트들이 '슈퍼 갑(甲)'이어서 거절하기 쉽지 않지만 손해가 크면 납품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사는 "처음부터 이마트의 가격인하는 사전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만 받았다"며 "롯데마트,홈플러스와도 납품물량과 가격을 협상 중인데 입장 차이가 클 경우 납품을 거부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마트 측은 "제조회사도 큰 회사들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통보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해명했다. 롯데마트 측은 "가격 대응을 적극적으로 하기 때문에 마트 측이 손해를 보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하 압박을 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군소 대형마트 · SSM도 인하 요구

대형마트 '빅3'의 가격인하 전쟁에 '새우등 터지는' 기업은 납품업체만이 아니다. 점포 수가 적은 하나로클럽,GS마트 등도 주변 경쟁 대형마트의 가격인하 바람에 울며 겨자먹기로 할인행사를 하고 있다. 하나로클럽의 경우 이마트 점포와 인접한 양재점,창동점에서 삼겹살(100g)을 900원대에 판매하는 등 점포별로 판매가격을 달리 매기고 있다. 하나로클럽 관계자는 "규모의 경제가 안 돼 이대로 팔면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GS마트 역시 오리온 초코파이(18입)를 3450원,해태 고향만두(1240g)를 4050원에 판매하는 등 일부 품목을 할인 중이다.

B사 관계자는 "최근 들어 대형마트의 가격인하로 매출이 줄어든 330㎡(100평) 이상 기업형 슈퍼(SSM)나 일반 슈퍼마켓들까지 대형마트와 비슷한 가격에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대형마트에서 시작된 '무작정 가격인하' 영향이 일반 슈퍼마켓까지 확산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최진석/김정은/강유현 기자/김미리내 인턴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