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기관장에 듣는다⑤]진영욱 한국투자공사 사장 “국부펀드 전쟁터…자산 1천억불로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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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투자공사(KIC·Korea Inveatment Corporation)는 정부의 외환보유액중 일부를 위탁받아 운용하는 한국의 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 SWF)다. 2005년 7월 출범한 KIC는 2007년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으로부터 외환보유액 일부의 운용권을 넘겨받아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했다. 자산운용을 시작한 지 3년만에 8억달러 규모의 흑자(3년 누적)를 달성했다.
2008년 7월부터 KIC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진영욱 사장(59·사진)은 18일 한국경제신문의 온라인미디어 <한경닷컴>과의 인터뷰를 통해 “해외에서 좋은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덩치가 있어야 한다”며 “현재 350억달러 수준인 KIC의 자산규모를 올해 연말까지 400억달러 수준으로 키우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우선은 400억달러…1000억달러까지는 가야"
KIC는 한국 유일의 해외투자전문기관이다. 공공부문의 여유자금을 효율적으로 운용해, 국부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기관의 설립 목적이다. 현재 운용자산 대부분은 해외주식과 채권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 투자를 통해 운용하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는 10억달러 규모로 대체투자(Alternative Investment:부동산 저작권 영화 등 주식과 채권을 제외한 투자)를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기획재정위원회는 KIC에 외국환평형기금 50억달러를 추가 위탁키로 했다. 올해 안에 이 자금이 들어오면 KIC의 자산규모는 기존 298억달러에서 348억달러 수준으로 커지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국부펀드의 전쟁터인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의 재산, 즉 국부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활동을 하기에는 덩치가 작다는 것이 진영욱 사장의 판단이다.
“KIC는 국제 사회에서 다른 나라의 국부펀드들과 경쟁해야 합니다. 국부펀드에 제일 중요한 것이 좋은 ‘딜’을 찾는 것인데, 덩치가 작으면 끼워주지를 않습니다. 좋은 딜은 보통 1000억달러 이상의 국부펀드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아랍에미리트(UAE)의 국부펀드 ADIA의 자산규모는 5000억달러 이상으로 추정되고, 노르웨이의 NBIM은 3560억달러, 싱가포르의 GIC는 2480억달러 등 세계 국부펀드의 85% 이상이 1000억달러를 넘는다.
정부기관인 KIC는 정부의 전략에 따라서 특정분야에 투자해 국가의 성장잠재력을 키워야 한다. 최근의 화두는 ‘녹색성장’이다. 신재생에너지와 스마트그리드 등에 투자를 해야 하는데, 이미 이 부분의 좋은 투자처들을 덩치가 큰 국부펀드들이 선점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녹색성장은 하나의 예고, 자원 분야나 바이오 부분 등의 투자를 통해 한국 산업전체의 힘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자산규모가 1000억달러 이상이 되는 이와 같은 일들이 좀 수월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KIC와 재정기획부는 앞으로 국민연금공단, 우정사업본부 등과 KIC의 운용 자산 확대 문제를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갈 계획이다.
◆“올 세계 경제 불확실성 가득…대체투자 확대할 것”
진 사장이 바라보는 2010년 세계 경제는 안개가 자욱하게 껴 있다. 출구전략을 시작으로 해서, 유럽의 자산건전성 문제 등 불확실성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이같은 전망에서 한국 국부의 자산운용사인 KIC는 대체투자를 새로운 활로로 생각하고 있다.
“지난해는 예외적으로 세계 금융시장이 좋았던 한 해였습니다. 또 시장의 방향성을 예상할 수 있어서 전략를 잘 세울 수 있었고 운도 좋았죠. 그러나 올해는 불확실성이 너무나 많아서 2009년과 같은 성과를 거두기는 힘들 것입니다.”
KIC는 2009년 위탁기관이 제시한 벤치마크를 139bp(1.39%포인트) 초과 달성했다. 위탁기관이 제시한 벤치마크란 채권은 영국 바클레이즈캐피탈의 국제채권지수이고, 주식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지수다. KIC의 수익률은 지난해 이들 지수의 평균상승률보다 139bp를 웃돌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채권 부문의 수익률은 12.78%였고, 주식은 29.40%였다. 전체로는 20.01%, 벤치마크와 대비해서는 1.39%포인트를 웃돌았다. 이같은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KIC의 전술적 자산배분(TAA·Tactical Asset Allocation) 전략이 유효했기 때문이다.
“2008년 부임했는데, 오자마자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졌습니다. 눈 앞이 캄캄해졌죠. 주식이 하루가 다르게 떨어져서 주식과 채권의 배분비중을 조절하기 시작했습니다. 위탁기관이 우리에게 제시한 투자비중이 채권 6, 주식 4였는데, 당시 주식은 상황이 안 좋았지만 채권은 수익률이 훨씬 좋았습니다.”
KIC에게 위탁자산의 10% 내외의 배분 자율성이 있었기 때문에 주식비중을 3으로 줄이고, 채권을 7로 늘렸다는 설명이다. 당시 미국은 경기부양 자금조달을 위해 국채를 엄청나게 쏟아내고 있었다. 이때 주식자금을 채권자금으로 이동시켜 수익률을 올렸고, 지난해 1분기부터는 주식시장 회복에 맞춰 채권쪽의 자금을 다시 주식에 투자했다는 것이다.
FX마진거래와 같은 통화거래에서도 성공했다. 달러약세가 대세로 굳어지면서 유로나 엔화에 투자했다. 깨지는데서 빼서 오르는데로 재빨리 올라타는 전략이 제대로 먹혀든 것이다.
진 사장은 “작년에는 시장이 어디로 가는지가 보여서 남들보다 반발 앞서 갈 수 있었다”며 “올해는 출구전략과 미국의 실업률, 중소형 은행의 상업용 부동산 문제 등 불확실한 요인들이 많아 세계 시장이 횡보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채권과 주식을 제외한 자산이나 상품에 대한 투자인 대체투자를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KIC는 올해 30억달러 내에서 부동산, 상품지수(commodity index), 헤지펀드, 프라이빗에퀴티(PEF) 등 대체투자에 나설 예정이다.
그는 “올해도 대부분의 자산 운용은 주식과 채권을 통한 전통적인 포트폴리오 투자에 두고, 대체투자 자산을 조금씩 확대해 나가겠다”며 “대체투자는 주식이나 채권에 비해 덜 유동적이지만, 수익성이 높기 때문에 투자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식과 채권의 단기적인 수익과 더불어, 대체투자를 통한 장기적인 이익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진 사장은 “KIC는 현재 자산의 80~90%를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고 있다”며 “사실 국부펀드의 본류는 유전, 우라늄, 석탄광 등이나 부동산 같은 큰 투자를 하는 것”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KIC는 또 올해 현지 밀착형 투자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오는 7월께 뉴욕에 사무소를 개설하고 현지에서 직접 글로벌 주식과 채권 투자를 한다는 방침이다. 더불어 해외 진출을 계기로 전략적 인수ㆍ합병(M&A) 투자 대상 기업 발굴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뉴욕사무소의 인원은 현지 채용직원을 포함해 7,8명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M&A 투자는 다른 국부펀드와 공동으로 컨소시엄을 구성, 구조조정 기업의 지분을 간접적으로 인수하는 등의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메릴린치 투자, 주홍글씨 아니다”
“메릴린치 투자는 주홍글씨가 될 수 없습니다. 아직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현재 투자원금의 60% 정도를 회복했고, 절망적인 수준은 지났습니다. 메릴린치는 세계에서 제일 큰 상업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에 인수됐습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분명 주가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메릴린치(현 뱅크오브아메리카)의 투자금이 현재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는 있지만, 실패한 투자로 낙인찍을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진 사장은 “KIC를 비롯해 세계 굴지의 헤지펀드들도 여전히 메릴린치 지분을 가지고 있다”며 “이들이 지금도 메릴린치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히 오를 것이란 확신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KIC가 보유 중인 뱅크오브아메리카 주식은 6200만주로 20억달러를 투자했다. 지난 12일 기준 수익률은 -41.86%다. 지난해 2월말 3.96달러였던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주가는 3월 말 6.82달러, 6월 말 13.20달러에서 지난 12일 기준 16.36달러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그는 “메릴린치는 뱅크오브아메리카의 한 부서로 여전히 살아있다”며 “한국에서 가장 많은 거래를 한 곳이 메릴린치이기 때문에 메릴린치의 지분 투자는 네트워크 형성이라는 전략적인 관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진영욱 KIC 사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행정고시 16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재경부 금융정책과장, 은행과장, 국제금융과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1999년 한화증권 대표이사 겸 한화경제연구원장, 2003년 신동아화재해상보험 사장, 2006년 한화손해보험 부회장 등을 지낸 뒤 2008년 KIC 사장에 임명됐다.
글=한경닷컴 한민수 기자 hms@
사진=양지웅 기자 yangd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