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놀이 명인 김덕수씨(58)는 요즘 '죽은 나무'에 '꽃'을 피우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단순히 옛 것으로 여겨져온 국악을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문화상품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는 것.그는 오는 27~31일 서울 광화문 아트홀에서 공연하는 '디지로그 사물놀이-죽은나무 꽃 피우기'에서 전통의 아날로그적 감성과 3차원(3D)의 최첨단 디지털 기술이 뒤섞이는 신명의 한 판을 보여줄 예정이다.

이번 무대에서 김덕수씨는 장구,북,징,꽹가리를 모두 연주한다. 번갈아 치는 것이 아니라 4명의 김덕수씨가 함께 사물놀이를 펼친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의 연주 모습을 미리 촬영하고 이를 3D 안경이 필요 없는 홀로그램 기술로 조작해 만든 그의 분신들을 공연 무대로 불러들인 것.여기에 무용가 국수호씨와 명창 안숙선씨도 '가상'으로 참여한다. 또한 무대에 설치된 각종 센서가 김덕수씨의 연주,관람객의 반응 등을 감지해 무대 위의 가상현실에 변화를 준다.

김씨는 "우리 전통 연희를 공부하면서 언제나 '지금,여기'의 모든 이들이 국악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그 연장선에서 이 시대의 최대 화두인 3D를 자연스럽게 떠올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뒤섞이고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압도하는 이 시대에 인간 특유의 '감성'이 사라지고 있다"며 "디지털이 할 수 없는 아날로그적 특성을 강조해 두 세계를 신명나게 어울리게 하는 것이 이번 공연의 목표"라고 덧붙였다.

이번 작품의 맛보기 공연은 지난해 9월 10분 내외로 짧게 선보인 적이 있고 이번에는 80분 남짓한 한 편의 연희극으로 발전시켰다. 피폐해진 지구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고 메말라가는 인간의 감성을 일깨우는 매개체로 사물놀이가 등장한다. 극본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썼고 홀로그램 기술은 국내업체인 '디스트릭트'가 맡았다.

김씨는 지난해 초부터 이 작업에 매진하고 있지만 아직도 만족스럽지 않다고 했다.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어려운 것이 소통인데 이 작품에서도 디지털 기술과 소통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특히 실제 사람들과 연주하면 상황에 따라 느리게 또는 빠르게 장단을 손쉽게 맞출 수 있지만 디지털 연주자와는 호흡을 맞추는 것이 어려워 이번 공연은 앙상블을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공연은 새로운 예술적 성취만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국내 디지털 기술의 '최전선'을 확인하는 작품이면서 한국문화산업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공연이다. 김씨는 "공연 결과에 따라 홀로그램 기술 수출 등 관련 분야의 매출이 늘어날 수 있고 이런 형태의 공연이 자리를 잡으면 음원만 팔던 시대를 넘어 홀로그램 영상을 파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5월 서울에서 열리는 제2회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무대에도 오르는 이 공연에 대해 그는 "이번에는 80점,5월에는 90점을 받았으면 좋겠다"며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도 공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