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만,『토니오 크뢰거』

토마스만의 소설 『토니오 크뢰거』의 주인공 토니오 크뢰거는 그 이름에서부터 ‘전형적’인 독일인들과는 차이가 있다. ‘크뢰거’라는 무겁고 약간은 침울한 느낌이 드는 중후한 성(family name)과 대조적으로 이름은 토머스 같은 흔한 독일식이 아니라 ‘토니오’라는 가벼운 이탈리아식 이름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북독일 상인 가문인 크뢰거家의 아버지와 남국의 정열적인 예술가 기질의 피를 지닌 남미 출신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토니오 크뢰거는 ‘불행하게도’ 어머니의 기질을 듬뿍 물려 받은 것으로 설정돼 있다. 결국 그는 이 예술가적 기질을 주체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세속적인 주변과 어울리지 못한 채 계속 겉돌고, 떠날 수 밖에 없는 존재로 성장한다.

반면 그런 이국적인 이름을 지닌 ‘결핍된’ 토니오가 남몰래 호감을 갖거나 짝사랑을 하는 존재들은 모두 전형적인 독일식 이름을 가진 ‘흠잡을 데 없는’존재들이다. 토니오가 언제나 주변을 끝없이 맴돌기만 할뿐 다가서지 못하는 여자친구의 이름은 잉에보르크 홀름. 잉에의 남친이자 토니오가 모든 면에서 부러워하는 완벽 엄친아의 이름은 한스 한젠이다. 독일 이름에서 ‘한스’와‘잉에’야말로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철수와 영희’에 해당하는 것으로 과거 고등학교 독일어 교과서에 등장하는 각종 다이얼로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8할은 한스와 잉에로 구성돼 있기도 했었다.

게다가 토니오가 14세 때부터 감정을 가지고 있던 한스와 16살 때부터 ‘가슴속에 담아왔던’잉에는 외모마저도 전형적인 게르만인으로 어두운 색깔의 눈(dunklen Augen)에 날카롭게 각진 얼굴을 지녔던 토니오와는 “닮은 구석이 없는”존재들이었다. 한스는 금발에 푸른 눈(stahlblauen Augen·영어로 스틸블루로 번역된다)을 지니고 있으며 잉에 역시 금발에 푸른 눈의 미녀로 묘사되고 있다. 게다가 이들 친구들은 성격마저도 소심하고 내성적인 토니오와 달리 쾌활하고 적극적인 존재들이다.

게다가 소심한 토니오는 자신의 호감마저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못한다. 쭈뼛쭈뼛 한스 주변을 맴도는 토니오의 모습은 작품 서장에서부터 자세하게 그려진다. 작품의 첫장은 오랫 동안 길에서 한스를 기다리던 토니오와 한스가 나누는 대화로 시작된다. 어린이들의 대화인만큼 기초 독어로 구성된 짤막한 말들이지만 둘간의 심리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묘사가 탁월하다. 한스 주변을 멤돌고 동경하는 토니오와, 모든 것을 다 갖췄지만 토니오의 동경을 눈치채지도 못하고 그같은 감정을 이해도 못하는 훈남 한스의 무관심이 짤막한 대화 속에 녹아있는 것이다.

“이제서야 오는구나 한스?(Kommst du endlich,Hans?)”라고 반갑게 말을 거는 토니오에게 다른 아이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한스는 토니오와의 약속을 까맣게 있은채 “왜 그러니?(Wieso?)”라고 되묻다가, 뒤늦게 생각난 듯 “그래 참 그렇지! 우리 함께 잠시 좀 걸을까(Ja, das ist wahr! Nun gehen Wir noch ein biß chen.)”라고 답하는 식이다.

토니오는 또 자신이 연모해 마지않는 잉에보르크 홀름을 천번(tausendmal)이나 쳐다보고 바라보기만 할 뿐(잉에가 다른 친구와 웃으며 대화할 때의 손동작이나 자태 등에 대해 아주 상세한 묘사가 나올 정도로 토니오는 잉에의 모든 것을 유심히 관찰한다. 단지 바라보고 관찰만 할 뿐 이지만...)끝내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다.

토니오는 자신과 이래저래 기질이 맞지 않았던 아버지와의 감성적 화해도 끝내 소극적으로 밖엔 하지 못한다. 예술적 도피처로 여겨지던 덴마크로 도피했다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고향에 돌아와 어린 시절 놀던 자택에 돌아오지만 자신의 집은 크게 변해 있었다. 동네를 대표하던 크뢰거 저택은 이제 주인이 떠나 시민도서관으로 모습이 변해 있었던 것. 비록 시인으로 성공했지만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가운데 자신의 옛집을 낯선 도서관원으로부터 안내받는 기막힌 장면이 연출된다.

예전에 활동하던 방에서 창밖을 보니 “정원은 황폐해져 있었지만 오래된 호두나무는 예전 그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Der Garten lag wüst, aber der alte Walnußbaum stand an seinem Platz.)”라는 심플한 한 문장으로 복잡한 심경을 전할 뿐이다.이 짧은 한 문장으로 어린 시절 호두나무를 둘러싼 추억이 절로 떠오르면서 상인으로 크길 바랬던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고, 먼길을 떠났다가 퇴락한 아버지의 유산을 바라보는 토니오의 복잡한 심사가 그림처럼 그려지게 된다.

TV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여주인공 신세경의 안타까운 짝사랑이 많은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부잣집 아들에 키 크고 잘생긴 의사인 ‘모든 것을 다 갖춘’ 무심한 남자를 바라보기만 하고 한없이 맴돌기만 하는 가진 것 없는 식모로 신세경씨가 열연하고 있는 것이다. 지붕킥의 이런 설정은 60년대 신파극에서도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비련의 여인이기도 하겠지만, 세대를 초월해 사람들이 이런 설정에 감정이입을 하는 것은 유치하면서도 순수한 모습 속에서 사람들이 일종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도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겠지만 모든 사람들은 일종의 짝사랑과 흠모, 열정, 질투심, 열등감, 동경을 대표하는 토니오 크뢰거를 저마다의 가슴속에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참고한 책>
Thomas Mann, Tonio Kröger, Fischer 1996

김동욱 기자 블로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