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가을. 코스닥시장의 '대장주' NHN이 코스피(유가증권)시장으로 옮기겠다고 선언하자 증권업계가 술렁였다. 덩치로 보나 위상으로 보나 NHN은 그간 코스닥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당장 코스닥이 ‘2부리그’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이례적으로 한국거래소의 최고위층까지 나서 이를 만류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NHN은 이를 뿌리치고 결국 코스닥을 떠났다.

NHN이 코스피로 이전한 것은 표면상 기관 투자자들의 요청 때문이다. 하지만 코스닥의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것도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횡령ㆍ배임과 주가조작이 끊이지 않는 코스닥에 있기보다 상대적으로 이미지가 좋은 코스피로 이전하면 더 많은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셈법이었다.

김병규 코스닥협회장(54ㆍ사진)이 작년 3월 취임하면서 시장의 이미지 개선에 주력한 것도 “코스닥은 투기판”이라는 ‘오해’를 풀기 위해서였다. 김 회장은 “주가조작이나 횡령 사건은 소수의 기업들에만 해당하는데 전체 시장이 매도당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언론에서도 이런 내용만 자꾸 다루니까 코스닥의 이미지가 더 안 좋아졌다”면서 “좋은 내용도 많이 보도해 달라”고 기자에게 당부하기까지 했다. 김 회장이 매년 협회 차원에서 해오던 자선행사를 더욱 확대하려는 것도 이런 취지에서다. 협회는 난치병 어린이 지원활동 등 그간 하지 않았던 사회 공헌활동도 새롭게 전개한다는 계획이다.

◆“존경 받는 코스닥 갑부가 많이 나와야…”

김 회장은 일회성 이벤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코스닥에 속한 기업들이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코스닥 기업의 발전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데 기여해야 근본적으로 시장의 신뢰가 쌓인다. 많은 성공 스토리가 나와야 꿈을 안은 젊은이들이 도전한다. 김 회장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재벌가(家)만 돈이 많은 게 아닙니다. 건실한 코스닥 회사의 대주주면 수 백 억원씩은 있습니다. 태웅의 허용도 대표는 수 천 억원대 갑부입니다. 재벌 그룹의 오너 뿐 아니라 이런 분들도 사회에서 존경받아야 코스닥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협회는 그래서 코스닥 기업들의 성공 사례를 책으로 묶어 발간할 예정이다. 또 언론 등을 통해 홍보활동도 보다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긍정적인 면이 자꾸 부각이 되어야 그간의 ‘오명’이 씻겨질 것으로 믿고 있어서다. 또 학생들을 상대로 존경받는 CEO 상(像)을 제시해 청소년들이 진로 결정이나 목표를 설정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계획이다.

김 회장은 “젊은 사람들이 코스닥의 성공한 CEO나 엔지니어를 보고 꿈을 갖게 하고 싶다"면서 "이를 위해 코스닥에서 더 많은 성공 사례가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력 갖춘 기업들로 제3시장 설립”

“임기 동안 꼭 한번 해보고 싶은 게 제 3시장을 만드는 겁니다. 기술력은 있는데 제대로 사업 할 기회가 없는 소규모 기업들이 한국에는 많습니다. 이런 회사만 모아서 시장을 형성해 주는 겁니다”

협회에서 제 3시장을 만들면 두 가지 이점이 있다는 게 김 회장의 주장이다. 먼저 코스닥 기업과 제 3시장의 기업 간 인수ㆍ합병(M&A)이 활발해져 양 시장 모두 활성화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코스닥에서 조달한 자금으로 제 3시장의 기술력을 흡수한다면 모두에게 좋은 일입니다. 코스닥 기업은 기술을 확보하고, 제 3시장 기업의 엔지니어는 적절한 가격에 기술을 팔 수 있으니까요”

김 회장은 이런 거래를 입양에 비유했다. 아이가 생기지 않는 부부가 입양을 하게 되면 부부와 아이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비해 코스닥 기업 간 M&A는 재혼과 같다고 했다.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장외기업을 상장 시켜서 어떻게든 수 백 억원대 대박을 터뜨리려고 하다 보니 어려운 겁니다. 기대 수준을 조금 낮춰서 현실적으로 적정한 가격에 엔지니어들이 기술을 팔 수 있게 길을 터줘야 합니다”

협회 주도의 제 3시장이 만들어지면 수익사업도 만들어지는 셈이다. 시장 형성과 M&A를 위한 자문, 중개 등을 하면 관련 수수료가 생긴다. 기업 지원 사업을 위한 재원이 추가로 마련되는 것이다. “그간 하고 싶은 게 많아도 제한된 예산 탓에 운신의 폭이 좁았다”는 게 김 회장의 하소연이다. 기업들로부터 회비를 더 받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면 이런 수익사업을 만들어 추가 재원 확보에 나서는 게 해답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세종시, 대기업이 가는 게 맞다”

궁금했다. 세종시에 대한 중소기업 사장들의 생각은 어떨까. 김 회장은 연간 1000억원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IT(정보기술) 부품업체 아모텍의 대표이기도 하다.

“국토 균형 발전이 명분이라면 행정기관보다는 기업이 들어가는 게 맞습니다. 기업이 가야 고용이 창출되고 부의 재분배도 이뤄지지 않겠습니까. 기업 입장에서도 자금력만 뒷받침되면 먼 미래를 보고 투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세종시 입주가 정해진) 삼성 같은 대기업이야 자금 사정이 뒷받침되니까 괜찮아 보입니다. 하지만 자금 여력이 안 되는 기업이 입주하는 것은 다소 위험해 보입니다”

정부가 세종시에 아모텍 입주를 권유하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그는 “전국 어딜 가도 그만한 가격에 땅을 사긴 힘들다”고 긍정적으로 답하면서도 “하지만 추가로 들어갈 자금이 많을 것 같다”며 말꼬리를 흐렸다. “자금여력이 관건”이라는 얘기를 되풀이하는 것으로 확답을 피했다.

김 회장은 1975년 서울고를 나온 뒤 서울대 금속공학과에 입학, 학사와 석ㆍ박사 학위과정을 마쳤다. 박사 과정을 밟으며 유유부설연구소장을 역임했고, 한국산업기술평가원(ITEP) 전기ㆍ전자부문 심사평가위원과 전자부품연구원(KETI) 전기ㆍ전자부문 심사평가위원 등도 지냈다.

그는 1994년 아모스(아모텍의 전신)를 설립한 뒤 1999년 아모트론과 아멕스를 합병해 지금의 아모텍으로 상호를 바꿔 건실한 회사로 키웠다. 김 회장 자신이 엔지니어 출신으로서 코스닥 기업의 CEO(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대표적인 성공 사례인 셈이다. 일부 악덕업주들로 인해 생긴 '투기판'이라는 코스닥 시장의 부정적 이미지를 말 그대로 '도전과 기회의 시장'로 바꿔 놓고자 힘쓰는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글=한경닷컴 안재광/김효진 기자 ahnjk@
사진=한경닷컴 양지웅 기자 yangd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