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은 통상 기업 회의실에서 무척 복잡한 논리로 얘기되지만 실제 마케팅이 이뤄지는 곳은 고객과 기업이 만나는 현장이다.

평범한 고객은 누구나 편의점 슈퍼마켓 백화점 할인점 은행 서점 등 다양한 소매점들을 접하게 된다. 소매점에 들러 상품을 둘러보고,문의하고,구입을 결정하는 쇼핑은 지극히 일상적이며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기업과 고객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 쇼핑의 현장에서 기업이 얼마나 과학적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판매 규모가 결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환경 심리학적 접근법을 업계에 도입한 인바이로셀의 최고경영자(CEO)인 파코 언더힐은 쇼핑 현장에서 진행한 정교한 관찰과 분석을 바탕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한다.

예컨대 저자의 조사에 의하면 쇼핑하는 고객은 정면을 피한다. 매장에 들어선 손님들은 우선 숨돌릴 곳부터 찾기 때문에 매장 맨 앞쪽이 가장 기피하고 싶은 장소가 된다. 따라서 매장 주인의 생각과 달리 고객들은 매장 정면에 있는 상품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고객의 성별이나 연령에 따라서도 쇼핑의 과학이 달라진다. 실제로 시험 삼아 옷을 입어본 손님들 중에서 남성 고객의 65%,여성 고객의 25%가 상품을 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곧 탈의실의 위치가 여성복 매장보다는 남성복 매장에 더 가까워야 한다는 것을 입증해준다.

반면 노인 고객을 대상으로 할 때는 조명을 고민해야 한다. 50대 사람들의 망막은 20대에 비해 20% 정도 빛을 적게 받아들인다. 따라서 매장과 레스토랑,은행은 조명을 더 밝게 해야 하고 인쇄물은 눈에 쉽게 띌 수 있도록 선명한 대조를 이뤄야 한다.

과거에는 매장에 충분한 수의 점원들이 배치됐다. 당연히 고객들은 점원들로부터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많은 소매업체들이 원가 절감을 위해 인건비를 줄이고 있다. 이는 기업 입장에서 경영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행위지만 고객 측면에서는 서비스가 부실해짐을 의미한다.

소매업체들은 인건비를 줄이면서도 서비스 수준은 그대로 유지하기를 원한다. 해결 방법은 예전보다 훨씬 정교한 매장 설계와 판매 방식을 통해 줄어든 고객 서비스를 보완하는 수밖에 없다.

인간의 인지와 동작,혹은 심리와 신체 구조에 관한 기초적인 이론과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쇼핑 환경을 설계하자는 저자의 제언은 간단하면서도 매우 심오하다.

이동현 가톨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