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서울 계동에 있는 현대중공업 서울사무소는 벌집을 쑤셔놓은 듯했다. 회사 사무실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사정은 이랬다. 한 조선 관련 전문 사이트에 삼성중공업이 현대중공업을 제치고 수주잔량 기준으로 사상 처음 세계 1위 조선회사로 등극했다는 내용이 올라왔다. 조선업계에선 충격적인 사건으로 여겨질 만했다.

현대중공업은 즉각 반박했다. 해당 조선 관련 전문 사이트가 영국 조선 · 해운부문 시장조사기관인 클락슨 자료를 잘못 분석했다는 주장이었다. 현대중공업의 울산조선소뿐만 아니라 군산조선소를 합치면 수주잔량은 932만8000CGT(표준화물선 환산t수)로,여전히 세계 1위라는 설명이다. 그렇긴 하다. 이날 세계 1위 자리를 놓고 벌어진 조선업계의 논란은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작년 신규 수주량으로는 대우조선해양(37억달러)이 세계 1위에 올랐다는 자화자찬도 나왔다. 조선업체들 사이에서는 저가 수주 비방전까지 달아오르고 있다. 일부 조선회사들이 후판 및 인건비 조달 등에 필요한 단기 운영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생존형 수주'에 내몰리면서 서로를 비난하는 이전투구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불과 2년여 전만 해도 국내 조선업체들의 업계 순위와 위상은 확고했다. 하지만 오랜 시황 침체로 인해 선박 수주 가뭄이 장기화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조선사들의 신규 수주량 및 수주잔량이 요동치고 있다. 조선업계에서 여러 논란이 일기 시작한 배경이다.

이를 지켜보는 업계 안팎의 시선은 싸늘하다. 최근 클락슨에 따르면 한국 조선업계가 지난해 연간 수주량 및 수주잔량 부문에서 처음으로 중국에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이 전 세계적인 수주 가뭄 속에서도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공격적인 수주에 나선 탓이다.

국내 조선업계는 세계 1위는커녕 조선 강국으로서의 자존심마저 잃게 될 위기에 처한 셈이다. 이미 몇몇 중소 조선업체들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나 법정관리에 내몰렸다. 대형 조선사들의 구조조정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업체별 순위를 따지거나 저가 수주 비방전을 벌일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향후 세계 1위를 수십년간 움켜쥐고 갈 전략을 짜고 압도적인 위상을 다진 다음에 논쟁을 벌여도 늦지 않다.

장창민 산업부 기자 cmjang@hankyung.com